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된 지 올해로 50년이 됐다. 반구대암각화는 지난 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우선 등재 대상에 선정됐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서는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얼마나 빼어난지를 ‘학술적으로’ 확인하는 것도 요구된다.
울산대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반구대연구소) 전호태(62) 소장은 반구대암각화의 문화유산적 가치를 연구하고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 암각화 연구논문과 저서를 가장 많이 냈다.
전 소장은 1993년 울산대 문화역사학과에서 학생을 가르치게 되면서 암각화 연구에 나섰다. 울산대에서 그가 처음 주관한 학술대회도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재평가를 위한 심포지엄이었다.
2011년부터는 반구대연구소를 통해 한국 암각화에 대한 체계적 학술조사에 들어가 암각화를 유적별, 유형별로 조사해 그 결과를 보고서로 간행하고 있다. 최근엔 선사시대부터 고대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모든 암각화(55개)를 정리한 학술연구서를 발간했다.
반구대암각화는 국내보다는 해외, 특히 유럽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생활양식, 종교 관념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고래사냥의 기원과 관련해서도 주목받고 있다. 마치 사전에 구상이 끝난 상태에서 대상을 화면에 집중적으로 옮겨 놓은 듯 보이는 그림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유적이라고 전 소장은 설명했다.
전 소장은 25일 “반구대암각화는 한국의 문화유산 가운데 국제학술지 등에 자주 언급되는 몇 안 되는 미술작품 가운데 하나”라며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세계 선사미술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높게 평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반구대암각화에 대한 연구가 국내외적으로 충분히,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미술사적, 고고학적, 인류학적 등 연구성과가 거의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가치 있다’고 선언되는 정도라고 전 소장은 말했다. 그가 한국암각화학회장을 맡으면서 시도한 공동연구 등을 통해 기본적인 연구의 첫걸음을 뗐고, 전 소장이 낸 한글과 영문 연구서 단행본 정도가 연구의 전부다.
그는 반구대암각화를 2차례 정밀 실측조사했다. 2016년 실측에서는 46점의 그림을 더 발견하는 성과를 냈다. 실측조사는 실측치와 번호, 위치가 제시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실측조사 결과가 제시되어야 연구자들의 객관적 접근과 연구를 가능하다. 국제적 연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전 소장은 ‘암각화학’이 정립되지 못한 상태로 세월이 흐르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암각화학은 넓은 의미에서 선사미술의 한 분야다. 국내에서는 선사미술이 학문분야로 자리 잡지 못했다. 그는 “학문적 기초가 제대로 갖춰진 상태로 암각화 연구가 이뤄지는지, 그런 성과가 얼마나 되는지도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할 정도”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 때문인지 암각화학을 연구분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나 연구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암각화학이 자리 잡기도 전에 연구자 세계 계승도 어려워지게 됐다”고 전 소장은 말했다.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 중이지만 학술분야 지원은 미미하다. 정밀실측 조사 국문보고서는 울산대 유적조사 실비를 아껴서 발간됐다. 영문보고서는 한국암각화학회 회원 몇몇이 사비를 모아 냈다. 연구소가 현재 작업 중인 반구대암각화 영문 종합보고서의 발간비 일부를 울산대에서 지원하는 게 전부다.
전 소장은 “연구비는커녕 기초자료 조사와 정리 발간도 사비를 들여야 가능하다는 점은 답답하다”며 “전시성 행사 예산은 해마다 대규모로 편성하면서 정작 세계유산 등재 추진 유적의 ‘학술적 가치 입증’을 위한 연구보고서 발간비는 아예 지원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요즘 반구대암각화 스토리텔링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전 소장은 “줄거리 정도만 구상하고 메모한 상태라서 겨울까지 책을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시도는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