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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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후 위기 속 소방이 준비하는 내일

며칠 전 늦게 찾아온 장마가 전국을 할퀴고 남부지방으로 내려갔다. 침수된 논밭과 망연자실한 농민들. 방송에서 전하는 남녘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지난해 입은 피해조차 아직 복구하지 못했는데 구례, 곡성, 남원 등지에 또다시 물폭탄이 쏟아졌다.

지난해 이맘때 폭우에서 우리는 소중한 동료 둘을 잃었다. 꽃다운 나이에 순직한 순천소방서 김국환 소방장과 충주소방서 송성한 소방교다. 그때도 50일이 넘는 장마였다. 올해도 장마에 앞서 두 달 동안 54회나 호우특보가 발령됐고, 늦게 온 장마는 남부와 중부를 오가며 물폭탄을 쏟아냈다. 우리가 마주하지 않았던 생소한 현상들이다. 남의 나라, 먼 훗날의 얘기로만 여겼던 기후변화의 산물이다. 흔히 우리는 기후변화를 손주세대의 일쯤으로 여긴다.

신열우 소방청장

“구글에서 ‘지구온난화’와 ‘손주들’을 쳐보세요. 58만5000건의 유사한 내용이 나올 겁니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녹색저널리스트인 빌 매키번이 그의 저서 ‘eaarth’(그는 녹색으로 a를 하나 더 넣었다)에서 한 얘기이다. 부연하면 존 F 케네디부터 빌 클린턴 등 숱한 이들이 한 얘기는 ‘손주세대를 위해 우리 지구를 구하자’는 호소였다.

기후변화는 이제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알던 전통적인 의미의 장마는 사라졌고, 말라리아는 풍토병이 됐다. 동해안 특산물이던 오징어가 서해안에서 쏟아지는 지금이다. 기후변화라는 프레임이 아니면 도저히 풀이가 안 되는 현상들이다. 최근 유엔 산하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기후변화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 다음은 살인 폭염’이라고 경고했다. 코로나19처럼 기후변화도 이제는 우리가 떨쳐낼 수 없는 불편한 이웃이 돼버린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기후변화 앞에서 우리 소방은 마음이 바쁘다. 우선 지난 경험을 교훈 삼아 현재의 재난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장마와 태풍에 대비해 전국 시·도 소방본부에 신속 대응체계를 구축했고, 산사태와 고립사고 등에 대비해 사고가 잦거나 상습적인 피해지역을 재난취약지역으로 집중관리하고 있다. 나아가 장마 이후 찾아올 폭염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의 철저한 대비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 중 하나가 기후변화는 우리가 지금껏 해오던 전통적인 방식과 속도로는 대처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비정상의 연속이고 극한기후의 일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방식은 기후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인명과 재산을 구하는 데 덜 효율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직은 시작단계이지만, 우리 소방은 눈을 멀리 들어 한발 먼저 진화하고 한발 앞서 대비하고자 한다. 발상의 전환과 혁신적 사고를 끌어내고자 한다.

여기에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것이 국민의 협조와 인식의 대전환이다. 기후변화라는 지구적 재난의 징후를 인정하고 좀 더 민감해져야 한다. 나아가 지구를 구하고 내 이웃을 구하기 위한 노력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세계적인 재난 속에 우리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크고 위대한 것이 아니다. 일회용품과 불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것과 같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 소방도 기후위기 속 국민 모두가 안전할 수 있도록 소방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만의 역할을 반드시 해낼 것이다.


신열우 소방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