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경찰 신고를 해?”… ‘보복범죄’ 급증하는데 피해자는 숨어 떨기만

경찰, 범행 우려 클 경우 긴급조치
신변보호 ‘스마트워치’ 확대 보급

“경찰에 신고를 해? XXX이 끝까지 가보자는 거지, 가만히 안 둬.”

지난 3월 서울 금천구의 한 오피스텔에 사는 30대 여성 A씨는 한밤중에 이런 욕설 섞인 고성을 들었다. 전날 오피스텔 복도에서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뭐야, XXX야”라고 욕설을 하고 A씨의 집 문을 세게 닫아 A씨를 넘어지게 하는 등 폭행했던 남성 B씨였다. A씨는 폭행 피해 직후 경찰에 신고한 터였는데, 바로 옆집에 살던 B씨가 조사를 받고 난 다음날 밤부터 오피스텔 복도와 계단을 오가며 A씨를 협박한 것이다. B씨는 집안에서도 A씨 집과 맞닿은 방의 벽을 치면서 “미친X”, “XXX이 죽여 버릴까, XXX를 잘라 버릴까”라며 살기 등등한 욕설을 퍼붓고 위협했다.

결국 B씨는 폭행·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협박 등) 혐의로 수사를 받고 기소됐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5월 B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8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령했다.

제주에서 중학생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백광석(왼쪽)과 김시남이 27일 제주동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신고를 빌미로 삼은 보복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제주경찰청이 과거 동거 여성의 중학생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하고 신상을 공개한 백광석(48)과 김시남(46) 또한 백광석이 가정폭력으로 입건된 상황에서 벌어진 보복범죄였다.

이에 경찰은 강력범죄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 접근금지 조치를 확대하기로 했다.

27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최근 ‘피해자보호-인권보호 지침 조화를 위한 종합추진계획’을 마련하고 보복범죄 위험이 큰 살인·강도·성폭력 등 강력범죄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 접근금지조치 법제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할 여유가 없을 만큼 긴박한 경우 피해자 100m 이내 접근금지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긴급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현행법상 가정폭력·아동학대·스토킹 외 강력범죄는 보복범죄가 우려되더라도 피해자 신변보호 외 제재 수단이 부족하다.

경찰이 피해자 보호 강화에 나선 건 보복범죄가 계속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2017년 257건이던 보복범죄는 2018년 3.9% 늘어난 267건, 2019년에는 전년 대비 9.4% 늘어난 292건으로 집계됐다.

경찰은 피해자 신변보호 목적으로 사용되는 스마트워치도 추가 확보해 보급할 방침이다. 제주 중학생 살인사건의 경우 사건 발생 보름 전쯤 피해자의 모친이 경찰에 신변보호를 요청했지만 스마트워치가 지급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현재 2300대인 스마트워치를 오는 9월 3000대, 내년 1월 3700대까지 늘리기로 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