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고대극장서 울려퍼지는 오페라… 한여름밤의 축제 [박윤정의 칼리메라 그리스!]

(16) 아테네 <끝>
2000년전 지은 ‘헤로데스 아티쿠스 오데온’
세계 관광객들에 잊지못할 감동·낭만 선사
아크로폴리스 아래 있는 ‘플라카’ 새벽 산책
소박하고 정겨운 골목길 풍경 마음에 담아
아크로폴리스 아래, 로마 지배 시기에 세워진 고대 극장 ‘헤로데스 아티쿠스 오데온’에서 오페라 노르마가 공연되고 5000석을 가득 채운 객석에는 기대감과 설렘이 감돈다.
그리스 역사에 로마가 등장한 것은 기원전 200년경이다. 로마가 이탈리아 전역을 통일한 해는 기원전 275년, 이후 카르타고 한니발 장군의 코끼리 부대를 잘 막아내어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고 지중해 패권을 장악했다. 이로서 크레타 문명, 미케네 문명 등 고대 그리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지중해 역사는 로마 시대로 들어선다. 세상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고 그리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망한 기원전 323년 이후 쇠락의 길을 걷는다.

 

결국 기원전 200년 전후로 그리스와 로마는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 기원전 168년, 드디어 로마군이 그리스를 정복한다. 당시 그리스 사람들을 상상이나 했을까. 이후 그리스가 독립하는 데 무려 200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빈센초 벨리니의 대표작 ‘노르마’는 기원전 50년 로마가 점령한 또 다른 곳, 프랑스 갈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로마에서 파견한 총독 지배를 받는 오페라 내용은 또 다른 식민지였던 아테네 극장에서 정복자와 식민지 이야기로 펼쳐진다. 로마가 아테네를 정복하고 아크로폴리스 바로 아래 세운 ‘헤로데스 아티쿠스 오데온’에서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역사를 뒤로하고, 청중들은 그리스인과 관광객들 구별 없이 유명 오페라 작품을 멋진 공연장에서 설렘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무대에서는 노르마의 아리아 ‘카스타 디바’(Casta Diva·정열의 여신)가 울려 퍼진다. 전설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는 아니더라도 야외 극장을 울리는 아리아는 청중들의 숨소리가 바람에 젖어들 만큼 고요한 공기를 감싸고 관객들 심장에 닿는다. 오늘의 디바는 이탈리아 출신 카르멘 자나타시오이다.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밤하늘에 울려퍼지고 객석을 가득 채운 수천명의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밤을 선사한다. 그리스계 미국인 마리아 칼라스가 보여준 화려한 벨칸토 창법의 아리아로 재발견된 노르마는 인기를 얻어 전세계 관광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매년 한여름 밤의 음악축제로 에게해 넘어 또 다른 고대 도시 에피다우로스와 이곳, 아테네 헤로데스 아티쿠스 오데온을 중심으로 펼쳐진다고 한다. 에피다우로스 그리스 극장에서의 음악은 어떠할지 상상하며 소프라노 음색에 색깔을 입혀 본다. 열기로 뒤덮이는 객석을 깊어 가는 밤공기로 달래며 달그림자에 감동이 깊어 간다.

플라카는 아크로폴리스 아랫동네 예쁜 마을이다. 작은 골목을 따라 카페와 기념품 상점들이 모여 있어 여행자들이 쉬어 가는 곳이다.

마지막 하루!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침 산책을 나선다. 눈앞에 담겨 있는 아크로폴리스 주변을 걷는다. 아랫동네 플라카 마을은 아직 하루를 시작하지 않았다. 조용한 거리를 걸으며 예쁜 마을의 작은 골목길을 살펴본다. 관객들에 둘러싸여 보지 못했던 작은 카페의 철문과 상점들의 간판이 새로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미코노스나 산토리니에서 본 아기자기한 골목들처럼 작은 골목길의 민낯은 소박하고 정겹다. 닫힌 철문은 새벽 이슬을 얹고 있어 차갑게 느껴지고, 레스토랑의 빈 야외 테이블은 쓸쓸해 보이지만 골목길 돌담에 켜켜이 쌓인 사람들 흔적은 따스하게 다가온다. 거리 곳곳에 조용히 서 있는 유적들이 이야기를 건넨다.

리시크라테스 기념비는 플라카 골목 한쪽에 세워져 있는 오래된 건축물로 기원전 334년에 거행된 디오니소스 제전 당시 리시크라테스의 합창단이 우승한 것을 기념하여 세웠다고 한다. 리시크라테스는 당시 제전 후원자이다.

낯선 거리에서 펼쳐지는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새벽 산책길은 언제나 흥미롭다. 작은 공원 오래된 건축물, 주변과 어우러져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기원전 334년에 세워진 리시크라테스 기념비로 제전이 열린 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무려 2300년이 넘었단다. 방치한 듯한 유적물조차 품은 세월이 놀랍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유적물의 클래스가 남다르다. 서양 문명 기원을 찾아 육로와 해로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둘러본 그리스, 나름 시간을 즐겼다고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틈을 가로질러 호텔로 돌아온다.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아크로폴리스와 아테네 거리를 다시 한번 눈에 담는다. 다시 올 날이 있겠지. 이번에는 방문하지 못했던, 고대사에서 미케네와 대등한 세력으로 소아시아 지역을 호령했던 트로이, 아테네와 힘의 균형을 이루며 또 다른 문명의 번성을 이루었던 스파르타, 올림픽 기원이 된 도시 올림피아, 그리스 12신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여겼던 올림포스산, 그리스 제2의 도시 데살로니키를 다음으로 미룬다. 또 다른 역사 속의 시간여행을 찾아 돌아올 것을 꿈꾸며 아테네 공항으로 들어선다.


박윤정 여행가, 민트투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