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진술이나 전문가 의견, 의사 진단서도 전부 결정적 증거가 아니거나 증거능력이 없대요. 폐쇄회로(CC)TV만 있었어도….”
평범한 아이 엄마였던 A씨는 수년째 지난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5년 전 5세(만3세)였던 A씨의 아이는 어느 날부터 유치원에 가기 싫어했다. 알고 보니 같은 반 아이들 모두 비슷한 말을 했다. 선생님이 때리거나 공구에 손가락을 끼우고 조이는 등 학대했다는 것. 2016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경기 남양주 유치원 멍키스패너 학대 사건’이다. A씨 등 학부모 5명은 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교사 B씨를 고소했지만,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 이후 서울고법이 재수사 요구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2018년 시작된 재판은 3년째 이어지고 있다. A씨가 가장 답답한 것은 유치원에 CCTV가 없다는 점이다. 그는 “아이들 증언이 구체적이고 일관적이었지만 CCTV가 없어서 재판을 시작하는 것조차 힘들었다”며 “교사 측이 ‘엄마들이 아이에게 거짓말을 시켰다’고 해 정신적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가해 교사도 CCTV가 없어 억울하다는데 왜 유치원 교사들이 CCTV에 반대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꼭 CCTV가 의무설치돼 다른 사람들은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유치원 등의 아동 보육·교육기관에서 아동학대나 안전사고 등이 발생할 경우 CCTV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 수단이지만, 여전히 많은 유치원에서 CCTV를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공립 유치원은 CCTV를 설치한 곳이 거의 없었다.
9일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대아협)에 따르면 대아협이 지난달 7일부터 전날까지 진행한 ‘유치원 CCTV 의무 설치 서명’에 온·오프라인을 합쳐 1만1000여명이 동의했다. 대아협은 유치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유아교육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해당 법안은 지난 6월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이 대표 발의했지만, 아직 소관 상임위인 교육위원회 상정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김 의원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전국 유치원 교실 CCTV 설치 비율은 39%다. 사립유치원은 87.9%(3433곳 중 3018곳)였지만, 국공립 유치원은 5%(4896곳 중 244곳)에 그쳤다. 어린이집이 2015년 CCTV 설치가 의무화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사립유치원은 부모들이 CCTV를 선호해 CCTV를 설치한 곳이 많지만, 국공립 유치원은 지원자가 많아 굳이 설치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동학대·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국공립 유치원에도 CCTV 설치율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관계자들은 ‘교권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유치원 교사 262명을 조사한 결과 55.3%(145명)가 CCTV 설치 의무화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교권 침해(43.4%) △유치원과 가정 사이 불신 분위기 조성(26.2%) △유아와 교사의 개인정보 노출(20.7%) 등이 꼽혔다. 우영혜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 회장은 “어린이집 아이들은 어려 학대를 당해도 말할 수 없지만 유치원 아이들은 의사 표현이 가능해 CCTV가 필요 없다”며 “CCTV는 교사의 수업권·인권을 침해하고 일부 학부모가 CCTV를 악용하는 것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씨 사례처럼 유치원에서 아동학대 의심 사례가 발생했을 때 CCTV가 없으면 상황 파악이 어렵다. 공혜정 대아협 대표는 “CCTV는 선생님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하는 것이 아니다. 아동학대 정황 등 꼭 필요할 때만 열람하게 돼 있고, 선생님이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리는 일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 CCTV가 의무설치된 어린이집의 경우 부모가 CCTV를 확인하는 것은 경찰 입회 등 제한적인 상황에만 가능하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CCTV 설치만으로도 학대 관련 경각심이 생길 수 있고, 아이들뿐 아니라 무고한 교사도 보호할 수 있다”면서 “어린이집은 CCTV가 의무화됐는데 유치원은 안 된다는 주장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옳지 않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