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새 임대차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 도입 이후 부작용이 잇따르고 있다. 같은 아파트 단지의 같은 전용면적에서도 보증금이 제각기 다른 다중가격 현상이 보편화하는 상황이다. 신규 계약과 갱신 계약 간 수억원씩 차이가 벌어지는 ‘이중가격’ 현상을 넘어 최근에는 ‘삼중가격’까지 속출하고 있다.
11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 고덕그라시움(84㎡)은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보증금 5억원대와 8억원대, 11억원대에 각각 전세 계약이 체결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보증금 8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는데, 지난달 13일과 28일에는 각각 보증금 11억원과 5억8000만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불과 한 달 남짓한 사이에 전셋값이 2배 가까이 널뛰기를 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최고가인 11억원의 전세 매물은 신규 계약, 최저가인 5억8000만원은 갱신 계약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5% 이내로 인상해야 하기 때문에 2019년 입주 초기와 비슷한 5억원대에 보증금이 책정된 것이다.
중간가격인 8억원대 계약은 기존 세입자가 재계약을 하긴 했지만, 집주인과 협의해 5%룰을 적용하지 않은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 단지는 비교적 최근(2019년)에 입주한 데다 5000세대에 육박하는 대단지라, 시세가 오락가락할 다른 이유가 없다”면서 “집주인이 실거주 의사를 보이자, 세입자가 보증금을 어느 정도 올려주는 선에서 재계약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에선 집주인이 실거주할 경우 세입자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 매물이 귀해진 데다 가격도 계속 오르는 상황이라 세입자 입장에서는 “보증금 인상에 동의하지 않으면, 직접 거주하겠다”는 집주인의 요구를 뿌리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는 것이다.
서울의 다른 단지에서도 이 같은 삼중가격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84㎡의) 지난달 모두 5건의 전세 계약이 신고됐다. 10억원대와 5억원대 계약이 각 2건이었고, 1건은 보증금 7억3000만원에 전세 거래가 성사됐다. 같은 단지의 같은 면적에서 2배 넘게 가격 차가 벌어졌다. 마포구 신수동 신촌숲아이파크(84㎡)도 지난달에만 보증금 11억원, 8억5000만원, 7억300만원으로 제각각 다른 가격대에 전세 계약이 이뤄졌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법으로 시장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다 보니, 예상과 다르게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면 그다음 신규 계약 때 더 많이 오른 보증금을 부담해야 하니 세입자 입장에서도 고통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전·월세 공급을 늘리지 않는 임대차법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