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딱 싸울 수 있는 인력만 있다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라는 전장의 최일선에 있는 의료진들은 현재 인력과 운영 방식으로는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고 호소한다.
지난 1월 하루 확진자가 1200명대로 치솟은 ‘3차 대유행’ 당시 서울시 보라매병원 안세영 간호사는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에게 공개편지를 써 ‘저희는 매일 실패하고 있다’며 의료진 소진과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나고 일일 확진자가 2000명 안팎을 오가는 지금, 보라매병원 코로나19 병동에서 일하는 윤나정(가명) 간호사는 “바뀐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코로나) 대유행 때마다 간호사들이 ‘갈려서’ 일한다”며 “3차 대유행 때와 상황이 비슷해졌다”고 밝혔다.
◆4차 대유행까지 왔는데… 해결되지 않는 인력난
16일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보라매병원 내 코로나 중증환자 수는 47명이다. 간호사 6명이 한 팀을 이뤄 3교대로 환자를 돌봤다. 간호사 1명당 8명의 중증환자를 맡은 셈이다. 3차 대유행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중증환자 53개 병상이 꽉 찼을 때의 업무량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다. 일반 격리병동에서도 간호사 1명이 7∼8명의 환자를 담당한다.
고글과 방호복을 착용하고 8명의 환자를 돌보는 것은 베테랑 간호사에게도 벅찬 일이다. 윤 간호사는 “N95 마스크를 쓰고 환자들 한 명 한 명씩 증상을 묻고 유의사항을 짚어주다 보면 더는 대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숨차고 힘들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간호사 업무는 점점 늘어간다. 치료 외에도 역학조사서를 확인하거나 환자 개별 의료기기 관리, 입·퇴실 진행 등 간접업무까지 늘었다. 윤 간호사는 “병동 간호사들이 에어컨 나오는 내부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다”라며 “보호구 입고 밖에 나가 환자 입원과 퇴원을 살피고 나면 다들 땀에 절어서 온다”고 토로했다.
감염병동 인력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한 서울시는 묵묵부답이다. 3차 대유행 때 의료진 소진 문제를 실감한 시는 간호사 1명이 담당해야 할 적정 환자 수를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에 의뢰해 인력 기준을 만들도록 했다. 하지만 지난 1월에 시작한 연구는 6개월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시 관계자는 “현재 연구 진행 중이고 8월 말쯤 공식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행 때마다 파견직으로 메꿔 해결
코로나19 의료 현장의 인력부족 문제는 4차까지 이어진 대유행 때마다 되풀이됐다.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은 최근 확진자가 폭증하자 코로나 환자 병상을 170여개로 기존의 2배 이상 늘렸다. 부족한 간호인력은 파견 간호사로 채웠다. 코로나 환자가 증가하면 지자체는 병원에 코로나 병상을 늘리라고 주문하고, 병원은 부족한 인력을 파견직으로 메꾸는 일이 반복된다.
하지만 의료진들은 대부분 단기간 근무하다 떠나는 파견직이 인력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천병원 이현섭(34) 간호사는 “처음 오면 익숙해지는 기간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파견 간호사들은 현장에 3주 정도 있다가 떠난다”며 “기존 인력들은 자기 일 하기도 바쁜데 그분들을 가르쳐야 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업무량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난다”고 했다. 코로나19 거점전담병원인 현대병원의 김부섭 원장은 “지금은 인력지원을 받지 않고 있다”면서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 단기간 오면 그 사람 훈련하고 가르치는 게 더 힘들다”고 밝혔다.
병원에서 간호사를 신규 채용하더라도 업무 강도가 높고 그에 비해 보상이 적다며 금세 퇴사하기 일쑤다. 코로나 병동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소정현(가명) 수간호사는 “대체로 경험이 없는 신입 간호사들이 이곳으로 오는데, 얼마 못 버티고 다 나간다”며 “올해 초 병원에 들어온 신입 11명 중 4명이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아침에도 사직서를 받았는데 보수가 훨씬 좋은 파견 간호사로 갈 거라고 했다”면서 “파견직이 3배는 더 받으니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박탈감도 우리 몫이다”라고 착잡한 마음을 드러냈다.
◆사직 부추기는 보상 형평성 논란
파견직과 정규 인력 간 ‘보상 형평성’ 논란은 코로나19 현장 의료진의 사기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인력난을 가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파견 간호사와 정규 간호사 간 처우 차이가 크다는 지적은 지난해 말부터 수차례 제기됐다. 파견 간호사는 하루 근무수당 20만원에 업무에 따라 위험수당과 전문직수당을 받는다. 숙식비 등 출장비를 합하면 한 달(22일 근무 기준)에 900만원이 넘는다.
반면 코로나 병동에서 일하는 저연차 기존 간호사의 월급은 200만원 중후반대이다. 여기에 추가로 정부 지원금이 나오지만, 한 달에 최대 몇 십만원 수준이다. 이마저도 병원마다 차이가 있다. 보라매병원은 한 달 최대 35만원을 주지만 경기도의료원 산하병원은 최대 80만원까지 지급한다. 월급과 수당을 합하더라도 파견 간호사가 받는 돈은 이들의 3배 가까이 된다.
또 기존 인력이더라도 어디서 근무하느냐에 따라 수당이 크게 달라진다. 같은 병원에 소속돼 코로나 환자를 돌보더라도 생활치료센터에서 일하는 간호사(유급파견 기준)는 출장비 포함 하루 14만원의 수당을 받는다. 한 달(20일 근무 기준)을 일한다면 280만원의 수당이 나오는 것이다. 코로나 격리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수당과 20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이 간호사는 “치료가 필요해 입원한 환자를 돌보는 일이 생활치료센터의 일보다 상대적으로 업무 강도가 높다”면서 “특히 파견직과의 보상 차이는 기존 인력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정도”라고 지적했다.
중앙사고수습본부 관계자는 ‘보상 형평성’ 지적에 “파견직은 빠르게 모집해야 하고 기간제이기 때문에 기존 인력과 단순 비교는 적절치 않다”며 “고용과 운영 주체가 공공인지, 민간인지에 따라 수당 격차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진들은 대유행 때마다 의료진 헌신에만 기대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김 원장은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의료진들이 많이 지쳤다”면서 “코로나 3년 차인 내년에도 이런 상황이 반복돼선 안 된다. 의료인력이 1∼2년 만에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위험을 무릅쓰고 코로나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의 헌신이 더 인정받고 존중받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