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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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끊긴 아프간 경제 직격탄… 탈레반, 아편 사업 본격화 우려

美·EU·독일 등 개발 원조 중단
중앙은행 외환보유고도 동결

아프간, 전 세계 아편 80% 생산
탈레반 수입의 60% 차지 추정
자금 확보 위해 사업 키울 수도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 병사들이 지난 18일(현지시간) M16 소총 등 미제 무기를 들고 수도 카불의 와지르 아크바르 칸 지역을 순찰하고 있다. 카불=AP연합뉴스

보통 ‘마약’ 하면 멕시코 등 중남미를 떠올리지만, 세계 최대 아편 생산지는 아프가니스탄이다. 전 세계 아편과 헤로인의 80%가 아프간에서 나온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뒤 아프간 경제의 주요 버팀목이었던 해외 원조가 속속 끊기면서 탈레반이 아편 사업에 더 박차를 가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날 아프가니스탄에 금융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앞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독일 등도 탈레반 점령 직후 아프간에 개발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대부분 해외에 예치된 아프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도 동결됐다.

탈레반의 자금줄을 조이기 위한 방편이지만, 아프간 경제의 구명줄 같았던 해외 원조 등이 끊기면 아프간 경제는 직격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아프간의 화폐 가치는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지난주 아프간 화폐 가치는 달러당 80아프가니를 기록했으나 18일 86아프가니로 뛰었다.

아즈말 아흐마디 전 아프간 중앙은행 총재는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아프간의 재정이 향후 심각한 위기에 몰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크기 때문에, 아프간 경제는 국방비·해외 원조·외환보유고 등에 의지해 왔다”면서 “그러나 자금이 동나고 있어 아프간 생활 수준은 급격히 하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합법적인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 ‘검은돈’에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아프간은 전 세계 아편·헤로인의 80%를 공급하는 최대 아편 수출국이다.

별다른 경제 기반이 없는 아프간에서는 예전부터 아편 재배가 흔했다. 2000년 당시 아프간을 통치했던 탈레반은 국제사회에서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아편 재배를 철저히 금지했다. 그러나 아편에 생계를 의지하던 수많은 농민들의 반발에 몇 달 만에 흐지부지됐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아프간 아편 서베이 2020’을 보면, 코로나19로 모든 경제활동이 뒷걸음치는 상황에서도 아프간의 아편 재배 면적은 전년보다 37% 늘어난 22만4000㏊를 기록했다. 재배 면적이 가장 넓었던 2017년 아편 생산액은 14억달러로, 아프간 GDP의 7%에 달했다. 아편 재배뿐 아니라 원료 공급 등 전후방 효과까지 고려하면 전체 규모는 66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버넷 루빈 전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는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아프간에서 불법 마약은 전쟁 다음으로 큰 산업”이라고 했을 정도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동부 낭가르하르주 주도 잘랄라바드에서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 대원들이 차량 주변에 모여 있다. 잘랄라바드=AP연합뉴스

탈레반도 아편 재배 농민이나 밀수업자에게 ‘수수료’ 등 명목으로 돈을 챙겨 2018∼2019년 연간 4억달러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 아프간특별조사관(SIGAR) 보고서는 탈레반 아편 수입이 전체의 60%에 이를 것으로 봤다.

미국은 2002∼2017년부터 86억달러를 투입해 아프간 아편 근절 사업을 벌였지만 실패했다.

알자지라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탈레반은 2000년 아편과의 전쟁에 나섰다가 민심을 잃은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그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자금 동원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아편 산업을 펼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윤지로, 이지민, 이병훈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