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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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투기·음주운전… "지방의원들, 뭘 위해 일하는지 모르겠다"

사진=연합뉴스

전북 지방의원들의 일탈 행위와 각종 비위가 잇따르면서 지방의회 위상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의원들의 일탈 행위로 시의장까지 나서 사과문을 발표했던 전주시의회에서는 또다시 한 젊은 시의원이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 사고를 냈다. 지역 출신 국회의원의 불법 선거운동을 도운 의원들은 법원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고, 또 다른 시의원들은 부동산 투기, 영리 행위 의혹 등에 휩싸였다.

 

정읍시의회는 동료 의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직위 상실형을 선고받은 시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부결해 2차 피해를 야기하면서 비난을 자초했다. 참다못한 지역 시민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20일 전북지방의회와 수사기관에 따르면 전주시의회 한승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면허취소 수준 이상으로 술을 마신 상태에서 운전하다 사고를 낸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검찰에 송치됐다.

 

한 의원은 지난 7일 오후 10시쯤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의 한 도로에서 만취(혈중알코올농도 0.08%) 상태로 차를 몰다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은 사고를 냈다.

전북 시민·사회 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4월 28일 전북도의회 기자회견장에서 동료의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피소된 정읍시의회 의원에 대한 제명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는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전북 기초의회 사상 최연소(26세)로 시의원에 당선된 이후 음주운전 폐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례 제정에 앞장서 이번 음주운전 사고가 더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한 의원은 2019년 1월 28일 열린 복지환경위원회 회의에서 ‘건전한 음주문화 환경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 윤창호법 시행 이후 한 달 새 음주운전 사고가 24건이 발생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어 음주 폐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건전한 음주문화 정착을 위한 교육·홍보의 지원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주류 광고를 제한하고 일부 구간을 음주 금지 지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등 내용을 담은 조례안은 이튿날 열린 본회의에서 압도적인 동의를 얻어 원안대로 가결됐다.

 

사고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음주에 따른 해악을 막자고 앞장선 의원이 정작 술에 취한 채 운전대를 잡은 것은 ‘내로남불’이 아니냐며 혀를 찼다. 사건을 접한 민주당 전북도당은 이번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를 거쳐 중앙당에 보고해 추가 조사와 검찰 기소 여부 등을 지켜본 뒤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앞서 전주시의회 소속 송상준 의원(〃)은 지난해 4월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064%로 운전을 하다 적발돼 지난 달 항소심 법원으로부터 1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음주운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전주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이 안건을 논의하고 있다.

당시 강동화 전주시의회 의장은 사과의 입장과 함께 “의회 차원에서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 사건 선고 이후 한 달 만에 또다시 발생한 청년 시의원의 음주운전 사고로 의회 위상과 신뢰에 생채기를 남기게 됐다.

 

강 의장은 이번에도 “불미스러운 일로 거듭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대책 마련에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민들의 실망감은 기대보다 훨씬 크다.

 

더 큰 문제는 전주시의원들의 일탈이 비단 이번 음주운전뿐만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숙 부의장과 박형배 의원은 이 지역 출신 이상직 국회의원의 불법 선거운동을 도운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직위 상실형에 해당하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만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경신 의원은 2016년부터 신도시 주변 부동산을 4차례 매매해 투기 의혹을 받았고, 김승섭 의원은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가 전주시에서 발주한 체육시설 개선 사업을 수주해 영리 행위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읍시의회는 최근 지역 5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공공성강화 정읍시민단체 연대회의’에 의해 국가인권위원회에 피소됐다. 성추행 가해 시의원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를 반복해 2차 피해를 낳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읍시의회 소속 김중희 의원은 2019년 10월 의원들 회식 자리에서 동료 의원에게 성희롱 발언을 하고 식당 밖에서 해당 의원의 신체를 접촉하는 등 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모두 직위 상실에 해당하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읍시의회는 사건 방생 1년6개월 가량 지나 1심 선고 이후인 지난 3월 김 의원에 대한 의원 징계의 건을 비공개로 표결에 부쳐 재적의원 17명 중 14명이 투표에 참여했으나 찬성 9명, 기권 5명으로 재적의원 3분의 2를 넘지 못해 부결됐다.

 

정읍시민연대는 지난 17일 정읍시의회를 인권위에 제소하고 “가해 시의원이 항소심에서도 직위 상실형을 선고받았는데도 아직 어떠한 징계도 하지 않아 버젓이 의원 임기를 채울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성추행 피해 시의원과 가해 시의원에 대한 공간을 분리하는 등 보호조치 없이 양 당사자를 옆좌석에 배치하고 이동 시 같은 차량에 탑승하도록 하는 등 2차 가해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읍시의회 측은 “인권위에 제소된 것 자체가 치명적이고 안타까운 일로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면서도 “가해 의원에 대한 징계는 대법원 판결까지 지켜본 뒤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의원들의 일탈을 보다 못한 지역 정가가 주민들은 “정치가 썩을 대로 썩어 곪아 터졌다”며 지방의회 무용론까지 제기한다.

 

서윤근 전주시의원(정의당)은 “특정 정당 후보가 공천만 받으면 시의원에 당선되는 상황에서 도덕성과 신뢰를 기대하기 힘들다”며 “지방자치와 의원의 역할을 겸허히 되돌아보고 주민의 기대치를 충족하기 위해 스스로 자질과 역량을 높여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한 시민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앞장서야 할 지방의원들이 되레 일탈 행위 등으로 주민들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다”며 “도대체 세비를 받는 의원들이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