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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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수용’ 갈라진 국제사회… “도덕적 책무” vs “감당 어렵다”

유럽 각국 수용 난색

美 20여개국과 협의… 예산도 배정
英·加 난민 2만명씩 받아들이기로
‘유럽 관문’ 터키, 장벽 건설 강경책
獨·佛 등도 “EU 차원 강경 대응 필요”
인도주의적 목소리 속 이견 확산
22일(현지시간)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려는 이들이 카불공항에 몰려들어 혼잡을 빚고 있다. 전날 카불공항에선 아프간인 7명이 인파에 깔려 압사했다. 공항 일대에서 사고 나 탈레반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람은 최소 20명으로 추산된다. 카불=신화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으로 난민 물결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제사회는 이들의 수용 여부를 두고 입장이 엇갈린다.

 

미국은 난민 수용을 위해 20여개국과 협의를 마치고 예산도 배정했다. 영국과 캐나다도 각각 난민 2만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유럽의 관문’인 터키와 그리스는 장벽 건설 등의 강경책까지 내놨고, 독일·프랑스 등도 “감당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22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한 이후 1만8000명 이상이 공항을 통해 아프간을 떠났다”며 “유엔난민기구(UNHCR)는 올해 들어서만 이미 55만명의 아프간 국민이 내전으로 인해 실향민이 됐다고 추산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 난민 수용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아프간 사태 책임론에 휩싸인 미국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CBS방송에 출연해 “아프간을 탈출한 사람들에게 환승지나 수용 장소를 제공할 수 있도록 20여개국과 협의했다”고 밝혔다. 미 백악관은 연방정부가 아프간 난민 지원과 관련해 최대 5억달러(약 5890억원)를 지출하도록 조치했다.

 

영국은 아프간 난민 정착계획을 세우고 장기적으로 2만명을 수용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올해 5000명이 영국에 정착하도록 하되 여성과 어린이, 종교적·민족적 소수자 등의 수용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캐나다도 2만명의 아프간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호주는 3000명, 우간다는 2000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상태다.

탈레반 정권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한 현지인 가족들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 외곽 덜레스 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에 입국한 뒤 기뻐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반면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난민 위기’를 겪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난민 수용을 꺼리는 분위기다. BBC는 “일부 EU 지도자들은 2015년 난민 위기가 반복될 우려를 피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대표적이다. 그는 최근 각료회의에서 “난민들이 파키스탄 등 아프간 인접국에 머물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국 난민 수용은 곤란하다는 얘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아프간 붕괴의 영향을 유럽 혼자 감당할 수는 없다”며 EU의 강경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는 난민 수용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의 주요 통로인 그리스와 터키는 반난민 강경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스는 난민 입국을 막기 위해 40㎞에 이르는 국경 장벽 건설을 마쳤다. 터키도 국경 경비를 강화하는 등 대책을 세우고 나섰다. 매일 1000명이 넘는 아프간 난민이 이란을 거쳐 터키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터키는 난민에게 안전한 천국이 될 의무가 없다”고 강조했다.

미군 장병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하려는 어린이 등 난민을 보살피는 모습. 미 국방부 홈페이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아프간 난민의 러시아 유입 가능성을 우려하며 “(서방국들이) 중앙아시아 국가들로 비자 없이 난민들을 들여보내고, 자국으로는 데려가지 않겠다는 것은 뻔뻔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EU 내부에서도 인도주의적 고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전날 스페인 마드리드 소재 난민 수용소를 방문하고 “난민 재정착은 중요한 도덕적 의무”라며 “국제사회는 (난민들에게) 합법적이고 안전한 경로를 제공해야 하며 최우선 논의사항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훈 기자 bh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