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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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아픔과 향수 담아 … 정제된 붓놀림으로 긋다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65) 송현숙의 획(劃)

파독 간호사로 오랜 기간 타향살이
환자 미술치료 접하고 그림에 눈떠
함부르크 미대 진학해 화가의 길로
여러 선 긋기 ‘획수 그림’으로 유명

언어 아닌 형상의 이미지로 線 강조
템페라 기법 통해 한국적 질감 표현
고도의 집중력으로 한 획 한 획 몰두
어지러운 세상살이 경종 울리는 듯
송현숙이 단 세 번의 붓질로 그려낸 나무에 천이 날리는 장면. 공중에 뻗은 천의 가벼움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3획’. 학고재 제공

# 담양의 소녀가 독일의 화가가 되기까지

송현숙(1952~ )은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대덕면 무월리에서 대나무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성장하던 시절은 나라가 전쟁 이후 국토 재건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던 때였다. 무너진 건물과 폐허가 된 땅이 제자리를 찾자 경제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펼쳐졌다. 이후 한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약 10여년 동안 실업 문제 해소와 외화 획득을 위해 인력을 수출했다. 당시 해외 국가 중 독일은 전쟁으로 인한 노동력 감소와 경제 성장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었다. 한국에서 다수의 사람이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독일로 떠나게 되었다.

송현숙이 자란 마을은 작은 산골 동네였지만 이런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 역시 1만여 여성의 간호인력 중 한 명으로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처음 계약했던 3년간의 근무가 끝나고 4년째부터는 정신병원에서 일했다. 거기서 치료의 일환으로 환자들에게 그림을 활용하는 모습을 봤다.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자기도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에 연필로 소박하게 그림일기부터 매일 하기 시작했다. 글은 간단하게 쓰고 그림에 심정을 담으려 애썼다. 고향이 그리운 날은 가족과 살았던 시골집과 그 안의 사물을 그리는 식이었다.

송현숙은 고된 생활 속에 그림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커져 함부르크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학교에 진학하고 1년 동안 결핵을 앓았는데 이때 그림에 더 소중해졌다. 본격적으로 개인 작업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몰두하는 생활을 살게 되었다. 독일에 온 지 꼬박 10년이 되던 1982년, 함부르크의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향수가 느껴지는 당시의 전시 제목은 ‘내 마음은 조롱박’이다. 같은 해에 작품세계를 인정받아 함부르크시에서 수여하는 예술인을 위한 장학금을 받았다.

이 무렵의 작품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초기 내 작업의 주제는 나의 아련한 기억들을 기호화한 것입니다. 글이나 언어가 아닌 형상의 이미지로 특히 선(線)을 강조했습니다. 한국에 11년간이나 가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을 그렇게 담았지요.”

이후 작가는 1990년대 들어 감정을 가라앉히고 단순하게 보이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이방인으로 느꼈던 아픔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정제해 몇 번의 선으로 화면을 완성했다. 작가의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획수 그림’은 이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5획은 다섯 번의 획을 그어 만들어낸 작품이다. 3획과 닮았지만 두 나무 사이 팽팽하게 묶인 천이 긴장감을 자아낸다. ‘5획’. 학고재 제공

독일의 함부르크미술관과 스위스의 베른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1990년대 중반 금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한국에서도 작품을 선보였다. 독일 뒤셀도르프미술관, 미국 캘리포니아 미술대학미술관, 한국 삼성미술관 리움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아시아 미술 트리엔날레 등의 주요 미술 행사에도 전시했다. 베른미술관, 뒤셀도르프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금호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화가로 전시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영화 ‘회귀’와 ‘내 마음은 조롱박’을 만들어 인정받기도 했다.

# 숨을 참고 온 정신을 담아 그어보는 획

송현숙의 작품 제목들은 간단하다. ‘5획’, ‘6획’, ‘7획’, ‘8획’, ‘7획 뒤에 인물’, ‘8획 뒤에 호랑이’ 등이다. 제목이 보여주듯 ‘5획’은 붓을 다섯 번 그어 내리고, 7획은 붓을 일곱 번 그어 내려 완성했다. ‘7획 뒤에 인물’은 인물을 그리고 그 위에 일곱 번의 획을 그었고, ‘8획 뒤에 호랑이’는 호랑이를 그린 뒤 마찬가지로 그 위에 여덟 번의 획을 그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감성적이며 깊지만 제목은 이성적이며 담백하다고 이야기들 한다. 하지만 ‘획(劃)’이라는 글자가 지닌 의미와 정신은 제목을 상징적이며 은유적인 것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몇 번의 획으로 그려내는 작품 속 소재는 10여 개 정도이다. 장독, 기와, 하얀 천, 나무기둥, 한복 입은 여인 등이다. 이제는 우리 일상에서 아스라이 사라진 이것들은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왔다. 신선이 달을 어루만지는 듯한 절묘한 아름다움이 있어 무월(撫月)이라 불리는 마을에서의 기억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그리는 한국의 전통적 소재는 유난히 더 고요하고 차분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달만이 동산을 비추는 밤의 서정이 작품 앞에 서면 나타나는 듯하다.

‘3획’은 작가가 2013년에 그린 그림이다. 제목을 보고 알 수 있듯 오직 세 번의 획을 그어 완성했다. 대나무와 같이 짙은 녹연두를 띤 색이 죽림(竹林)과 같이 화면 전면을 채운다. 그 위에는 검정과 갈색을 섞어 그은 하나의 획이 나무기둥이 있다. 나무기둥에 매어진 하얀 천은 바람에 자유롭게 날린다. 공중에 펼쳐진 천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삼베나 명주와 같은 한국 전통 천인 것을 알겠다. 작가가 자연을 닮은 한국적 질감을 표현하기 위하여 템페라를 고수해 그린 덕이다.

송현숙 개인전 전시 전경. 학고재 제공

송현숙은 템페라 기법으로 활용해 그림을 그린다. 템페라 기법은 서양의 것으로 고대와 중세를 거쳐 초기 르네상스에 특히 널리 애용된 바 있다. 계란이나 무화과나무 수액 등을 용매로 삼아 거기에 안료를 섞어 바른다. 작가는 이 방식을 통해 쑥색과 흙색, 그리고 흰색을 칠해 무광의 깊은 화면을 만든다. 그가 여느 템페라 작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를 칠할 때 한국의 귀얄붓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작은 빗자루 같은 귀얄붓은 제 흔적을 흙같이 거칠면서도 부드럽게 표면에 남긴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두고 버클리 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로렌스 린더(Lawrence R. Rind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송현숙 작가는 소재가 얼마나 익숙한가와 상관없이, 매번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화법을 통해 그 주제에 새로이 몰두한다.” 송현숙은 단 몇 번의 획으로 그림을 완성하기 때문에 이 최소한의 붓놀림은 작가에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복잡한 상념들과 에너지를 떨쳐내고 마음의 평안함과 정신의 집중을 지녀야만 붓은 엇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작가는 소란스러움이 가라앉은 저녁시간에 홀로 작업실에 들어가 캔버스를 마주한다. 작업실에서 작가는 캔버스 앞에 붓을 들고 서서 크게 숨을 들이켤 것이다. 정신을 비우고 한 번의 호흡으로 획을 그어 내릴 것이다.

어느덧 처서가 왔고 올해의 계절들도 절반이 지나가 버렸다. 짧다면 짧을 봄과 여름을 되돌아보는 데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낀다. 팬데믹과 거기서 비롯한 아시아 혐오, 미얀마 사태와 아프간의 변화까지. 이 모든 것이 단 두 계절 사이에 일어났다는 것이 마음마저 심란하게 만든다. 송현숙의 작품을 꺼내어 한참을 본다. 작가처럼 직접 획을 긋는 것은 아니지만, 오로지 그 획을 보는 일에만 힘을 쏟는다. 혼란에서 벗어난 명확한 정신으로 세상을 보고 행동해야 할 것 같아서다.


김한들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