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고 뜨거웠던 여름의 기운이 한풀 꺾이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이 무렵 울릉도에 가면 은빛 바다 물결, 푸르른 하늘 아래 활짝 핀 하얀색 꽃을 만날 수 있는데 바로 ‘섬쑥부쟁이’이다. 뱃머리가 도동항에 들어선 순간부터 해안가와 산 곳곳에서 오밀조밀 하얀 꽃송이가 다발을 이루어 울릉도를 찾는 사람을 반겨주는 고마운 존재다.
섬쑥부쟁이는 울릉도민에게 ‘부지깽이나물’로 불리는데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풀, ‘부지기아초(不知飢餓草)’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과거 울릉도 개척민의 춘궁기를 버티게 해주던 귀한 식재료 중 하나였다. 섬쑥부쟁이는 푸른 잎을 유지한 채 월동하는 식물로 겨우내 쌓인 눈 이불 밑에서 자란 새순을 3월부터 수확하며 주로 건산채와 장아찌를 담가 먹는다. 맛이 뛰어난 탓에 관광객의 입소문으로 수요가 늘어 울릉도를 대표하는 상품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고, 몇해 전 청와대 추석 선물세트에 ‘부지깽이나물’이 선정돼 큰 화제가 됐던 식물이기도 하다.
울릉도에서 섬쑥부쟁이는 계절 내내 건나물, 봄에는 새순, 가을엔 꽃으로 볼 수 있지만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식물이 아니다. 섬쑥부쟁이는 1919년 일본의 식물분류학자인 나카이에 의해 우리나라 자생식물로 처음 보고됐으며, 일본과 러시아에 분포하는 종인 아스터 글레니와 동일한 종으로 여겨졌으나 2005년 학술연구를 통해 아스터 슈도글레니라는 학명을 부여받아 신종으로 발표됐다.
식물 이름 앞에 ‘섬’이 붙으면 대체로 울릉도에만 자생하는 고유 식물을 의미한다. 울릉도는 약 200만년 전 화산활동에 의해 생성됐으며, 과거 육지와 연결된 적 없었던 고립된 섬이다. 이 때문에 울릉도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소중한 고유 식물 약 40종을 품고 있는 보물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소중한 고유 자원인 ‘섬쑥부쟁이’, 앞으로도 보물섬 울릉도민의 든든한 동반자가 돼 줄 것이라 믿는다.
[우리땅,우리생물] 보물섬 울릉도의 ‘섬쑥부쟁이’
기사입력 2021-08-26 23:15:14
기사수정 2021-08-26 23:15:13
기사수정 2021-08-26 23:15:13
김보윤,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사
Copyrights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