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22년 전 일어나 장기미제 사건으로 남았던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의 살인교사 피의자가 구속된 가운데 방송에서 자신이 살인 교사범이라는 주장을 번복하고 있어 유죄 입증이 가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살인 교사 혐의로 구속된 김모(55)씨는 이미 2014년 공소시효가 지난 줄 알고 방송 인터뷰를 자청해 살인 교사를 주장했지만 검찰과 경찰은 공소시효 만료 이전에 해외에 도피 중이어서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며 기소와 유죄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김씨에게 범행을 지시했다는 당시 제주지역 폭력조직 ‘유탁파‘ 두목 백모씨(2008년 사망)와 살인을 저질렀다는 손모(2014년 사망)씨 모두 이미 사망한 상태이어서 김씨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씨는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 가며 자신이 살인교사범이라고 주장한 것은 해외에서 입국할 때 필요한 여비라도 마련해보기 위해서였다며 살인 교사는 허위 인터뷰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사건 당시 유족이 수사선상에 오르기도 했던 만큼 자신의 자백을 통해 유족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지금이라도 피해자의 원혼을 달램으로써 유족 측으로부터 사례비라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살인교사범이 맞다면 당시 폭력조직 두목 백씨에게 의뢰한 배후를 밝혀내는 것도 검찰과 경찰의 몫이다.
김씨는 법원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제주동부경찰서에서 제주지법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다가 “사건 관련 배후 세력이 있느냐”는 질문에 “배후 세력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씨가 방송에서 사건 당시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한 점으로 미뤄 범죄 전문가들은 김씨도 범행 현장에 있었거나, 김씨가 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씨가 제주시내 음식점에서 만나 ‘혼 좀 내주라’라고 지시했다는 당시 두목 백씨는 교도소 수감 중이었고, 범행을 했다는 손씨는 강도 혐의로 수배 중이어서 김씨의 주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김씨에게 범행을 지시한 제3의 인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당시 수사 관계자는 “제주지역 폭력조직이 민간인 살인을 교사한 사례는 본 적이 없다. 게다가 검사 출신 변호사 살인을 사주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검거된 김씨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면 유죄 입증이 힘들다”라고 말했다.
김씨와 조폭 생활을 함께했다는 A씨는 “당시 행동대원들 모두 낌새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두목 백씨는 살인을 사주할 리가 없고 손씨도 살인을 저지를 만할 인물이 아니다. 범행을 했다면 선거 관련은 아니고, 호텔 운영권을 둘러싼 것일 수도 있다. 당시 이 변호사는 호텔 법정관리인이었다”라며 “공소시효가 지난 줄 알고, 유족들에게 사례금을 받기 위해 방송에서 허위 인터뷰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씨가 지목한 백씨와 손씨 모두 사망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경찰은 그가 이 변호사를 살해하는데 직·간접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해왔다. 당시 방송에서 김씨는 이 변호사의 동선과 골목의 가로등이 꺼진 정황도 알고 있었고, 범행에 사용된 유사한 모양의 흉기를 직접 그릴 정도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게 경찰 판단이다.
김씨가 살인교사범이 맞다면 범행 동기를 밝혀야 한다. 세간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선거 관련인 지, 호텔 운영권을 둘러싼 범행인 지 실체가 드러날 지 주목된다.
당선된 도지사 후보의 금품 선거 의혹을 폭로한 뒤 사라진 선거운동원 손모씨에게서 관련 자료를 입수하고, 사건을 추적하면서 그를 찾아서 법정 증인으로 세우려 설득하려 했던 이 변호사가 피살당한 사건이 관련 있다는 것이다.
제주참여환경연대는 성명을 내고 “이 변호사의 죽음에 대한 배후를 밝히라”고 촉구했다.
단체는 “당시 이 변호사는 양심선언을 한 청년회장을 보호하고 있던 상태에서 살해됐고, 살인을 교사한 피의자와 살해를 한 살인자 모두 폭력조직의 조직원이었던 점은 배후에 당시 제주도지사 후보측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배후가 없이 단독으로 살인교사를 했다고 볼 구체적 정황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피의자의 진술에만 의존해 단독 범행으로 결론지어 21년간 묻혀 있는 진실이 묻힐까 두렵다”고 밝혔다. 또 “당시 유력한 제주도지사 후보에게 치명타가 될 양심선언자를 보호하려는 결심을 한 이 변호사는 의인이며 제주 사회에 소금과 같은 존재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이 사건을 수사함에 있어, 철저한 배후수사가 가장 중요함을 절대 망각해서는 안 된다. 수사 결과를 통해 제주도민이 충분히 인과관계에 대해 납득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수사를 했다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범행 동기와 배후 등 이 변호사 피살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전담 수사팀을 가동했다.
제주지검은 “강력 전담 2개 검사실을 투입해 ‘이승용 변호사 피살사건 전담 수사팀’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대검찰청은 ‘제주 변호사 피살사건’ 등 살인 범죄를 철저히 수사하고 엄정하게 대처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검찰이 사건 실체 규명에 주력하고 있다.
제주지검 관계자는 “현재까지 피의자에 대한 체포영장 및 지명수배, 국내 강제송환, 구속에 이르기까지 경찰과 긴밀히 협력해 왔다”며 “신속한 수사로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고 범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공소시효도 남아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사건 당시 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었다. 이 사건은 기존 15년이던 공소시효가 이미 지났지만 경찰은 일명 ‘태완이법’을 적용해 검거했다. 태완이법은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다. 2015년 7월 24일 국회를 통과해 같은 달 31일부터 시행됐다.
경찰은 태완이법을 적용하기 위해 먼저 형사소송법 253조(시효의 정지와 효력)을 참조했다. 이 법에 따르면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로 도피한 경우 그 기간만큼의 공소시효가 정지된다. 경찰은 김씨가 공소시효 만료 전 해외로 출국한 기간을 모두 합치면 만 8개월 이상으로 보고 수사를 벌여왔다. 수사팀이 출입국 기록을 분석한 결과 김씨는 공소시효 만료 전인 2014년 11월 5일 이전에 수차례에 걸쳐 해외를 오간 것으로 파악됐다.
이로 인해 이 사건의 공소시효 만료일은 2014년 11월 5일 0시가 아닌, 최소 만 8개월을 제외한 2015년 8월 이후가 된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결과적으로 경찰은 2015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해당 사건에 대해 태완이법 적용이 가능하다고 봤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사건 공소시효 만료 8개월 이전인 2014년 3월 해외로 도피했기 때문에 그 시점부터 공소시효가 중단됐고, 살인범으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공소시효가 정지된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가 공소시효 만료 전 해외로 출국한 기간을 모두 합치면 만 8개월 이상이 된다.
김씨는 당시 사기 등의 혐의로 입건됐던 상태로, 경찰은 김씨가 해외로 출국했던 이유 중 하나가 처벌을 면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한 도피로 볼 수 있는 진술과 자료 등 실체적 증거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사건은 2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11월 5일 새벽, 제주시 삼도2동 제주북초등학교 북쪽 삼거리에 세워진 쏘나타 승용차 운전석에서 한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남성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서울지검과 부산지검 검사를 거쳐 1992년 고향 제주로 내려와 변호사 사무실을 연 이승용(당시 45세) 변호사. 이 변호사는 예리한 흉기로 가슴과 배를 찔리고 왼쪽 팔꿈치 부분도 흉기에 관통당한 채 숨져 있었다.
경찰은 사건 현장과 가까운 중앙지구대에 7개 팀 40여 명 규모로 수사본부를 꾸려 수사에 나섰다.
부검 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심장 관통에 의한 과다출혈이었고, 왼쪽 팔꿈치 관통상은 방어하는 과정에서 흉기에 찔렸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견이 나왔다.
명백한 타살이었다.
숨진 이 변호사의 오른손에는 차량 열쇠가 쥐어져 있었고, 차량 내부는 물론 차량 밖 도로에도 혈흔이 낭자했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이 변호사가 차량 밖에서 괴한의 흉기에 찔렸고, 이를 피해 차 안으로 들어와 운전대를 잡으려다 숨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가정이나 식당 등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종류와 다르고, 살해 수법도 매우 잔인하다는 점 등이 주목됐다.
당시 현금이 든 지갑이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어 금품을 노린 강도라는 가능성은 배제됐다.
치정에 의한 범행, 불량배에 의한 우발적 범행, 직업이 변호사라는 점에서 검사 시절 사건이나 수임 사건에 대한 불만이나 원한에 의한 계획적 살인 등 다양한 추측이 나왔다.하지만 이 변호사가 1년여간 사건을 수임하지 않았고 치정 문제도 없었다는 주변 진술이 이어졌다.
현장에서는 범인을 추정할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황. 경찰은 목격자를 찾는 전단 1만여 장을 배포하고, 범인 검거 현상금 1000만원까지 내거는 등 강한 수사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지금처럼 곳곳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거나 차량마다 블랙박스를 달고 다니던 시절도 아니었고, 계속되는 수사에도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경찰 수사는 한 발짝도 진척되지 못했고, 수사본부는 1년여 만에 해체됐다.
이 사건은 60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사건기록을 남긴 채 발생 15년 뒤인 2014년 11월 공소시효가 만료되며 영구미제로 남는 듯했다.
그 후로 21년 만인 지난해, 이 변호사 살인을 교사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이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제주지역 조직폭력배인 세칭 ‘유탁파’의 전 행동대원 김씨는 지난해 6월 27일 방영된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인터뷰에서 1999년 10월 당시 폭력조직 두목인 백모씨에게서 범행 지시를 받았고 ‘갈매기’라고 불렸던 동갑내기 조직원 손모씨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살인을 교사했다고 자백한 셈이다. 하지만, 김씨가 범행을 지시하고 실행했다고 지목한 백씨와 손씨는 이미 병사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황이다.
제주경찰청 미제사건 전담팀은 곧바로 재수사에 돌입했다.
경찰은 김씨가 인터뷰한 내용이 자백이 될 수 있다고 판단, 캄보디아에 있던 김씨를 국내로 송환해 지난 18일 제주로 압송했다.
김씨의 신병은 확보됐지만, 김씨가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 가며 밝힌 내용이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왜 당시 이 변호사를 살해하라는 지시가 있었는지, 경찰이 추정하는 대로 김씨가 실제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등 의문점이 수두룩하다.
특히 김씨가 자신은 교사범이라고 주장했지만, 흉기 모양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등 진술을 상세히 한 점 등으로 미뤄볼 때 그가 실제 살인을 했거나 현장에 있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김씨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면 김씨에게 범행 지시를 했다는 당시 두목 백씨, 실제 범행을 저질렀다는 손씨를 조사해봐야겠지만 두 사람은 이미 사망했다.
김씨가 경찰 조사에서 감춰왔던 진실을 말할 것인지, 이번 수사를 통해 22년 전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