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부부 강간죄가 인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9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최근 인도 차티스가르 고등법원에서 부부 사이의 비정상적인 성관계가 있었는데도 이를 강간죄로 보진 않는다는 판결이 나와 논란이다. 차티스가르 고등법원의 나레시 쿠마르 찬드라반시 판사는 이달 26일 “남편이 부자연스러운 성관계를 시도했다고 해도, 인도에서는 부부간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강간이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해당 판결이 구시대적 유물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인도의 평론가인 코타 닐리마 박사는 “법원은 언제쯤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라며 분개했다.
찬드라반시 판사의 판결은 인도 형법 375조에 근거해 내려졌다. 영국 식민지 시대 당시 만들어진 인도 형법에는 강간 예외 조항에 성인 부부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성관계가 결혼에 포함돼 있다는 전제로 만들어진 조항이다.
인도를 포함해 부부간 강간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36개국에 달한다. 영국 법원은 1991년 부부간에도 성범죄가 성립할 수 있음을 인정했고, 한국은 2009년 판례를 만들었다.
인도 정부 조사에 따르면 기혼 여성의 31%는 남편으로부터 신체적, 성적, 정서적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펜드라 백시 인도 델리대학교 법학과 명예교수는 “수년간 가정폭력과 성희롱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여성의 인권이 어느 정도 개선됐지만, 부부간 강간에 대해서는 아무 진전이 없다”고 지적했다.
부부 강간죄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인도 내에서 커지면서 최근 유의미한 판례도 나왔다. 이달 6일 인도 남부 케랄라주의 고등법원은 강간이 이혼 청구 사유로서 작용한다고 판결했다. 무하메드 무스타크 판사와 카우저 에다파가스 판사는 이달 6일 판결문에서 "남편이 부인의 자율성을 무시한 채 강간을 저질렀고, 아내를 소유물로 보는 관념은 현대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다“고 밝혔다.
닐리마 박사는 “희망은 사법부에 있다”며 “몇몇 판례가 작은 승리를 안겨주고 있긴 하지만, 부부 강간죄 성립의 장벽은 여전히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간 예외 조항에 부부 관계를 포함하는 현재 형법은 여성 인권 신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인도에서 강간이 범죄인 이유는 여성 인권을 유린해서가 아니라 여성을 다른 남성의 재산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며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인도 국민이 자유로워졌지만, 남성이 아닌 절반의 국민(여성)은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