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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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칼럼] 청산돼야 할 불공정 공과 평가

공적은 무시, 과오는 과대평가
진보·보수, 서로 “청산 대상” 공격
사회갈등 경제손실 연간 246조
미래 위해 반목 접고 협력해야

덩샤오핑 전 중국 최고지도자는 잠자던 중국을 깨워 G2(주요 2개국)의 반열에 오르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념보다 경제발전을 우선시한 그의 흑묘백묘론이 없었다면 중국은 ‘죽의 장막’ 안에 고립된 빈국 신세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은 악법 철폐, 조세 감면 등의 위민 정치로 태평성대를 열었다. 중국 역대 황제 중 최고의 명군으로 칭송받는다. 덩샤오핑과 이세민은 민생 안정과 국력 신장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들의 탁월한 리더십은 선대 지도자와 신하들에 대한 공정한 공과평가에서도 빛을 발한다.

“하나의 악으로 그 선을 잊지 말고, 작은 흠으로 그 공을 덮지 마라(不以一惡忘其善. 勿以小瑕掩其功).” 이세민은 후세 제왕들에게 공과를 평가할 때 한면만 과도하게 보지 말 것을 당부했다. 편향된 공과평가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이세민의 공정한 공과평가와 신상필벌은 직언을 서슴지 않은 명재상 위징과 같은 인재들이 주변에 넘쳐나게 한 원동력이다.

김환기 논설위원

공칠과삼(功七過三). 마오쩌둥 전 주석에 대한 덩샤오핑의 평가다.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공적은 70%, 문화대혁명의 과오를 30%로 봤다. 공과 과를 있는 그대로 평가한 것이다. 중국의 미래를 위해선 최선의 평가가 아닐 수 없다. 덩샤오핑이 마오쩌둥을 적폐청산 대상으로 삼았다면 국론분열로 오늘의 중국은 없었을지 모른다.

역사인물에 대한 공정한 공과평가는 국민통합의 자양분이 된다. 불공정한 공과평가는 국민분열의 불쏘시개로 작용한다. 한국은 편향된 공과평가가 얼마나 국익을 저해하는지 배울 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다. 진보 진영의 김원웅 광복회장이 8·15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보수 진영을 친일파라 지칭하며 청산을 요구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보수 정권들은 국가 법통이 임시정부가 아니라 조선총독부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망발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제 강점기 임시정부 수반을 역임했고 광복 후 초대 내각을 독립운동가로 꾸렸다는 건 역사적 사실이다. 그에게 친일파 모자를 씌우는 건 견강부회다. 독재 정치를 하다 4·19 혁명으로 하야했지만 북한의 남침에서 나라를 지키고 토지개혁과 교육혁명으로 민초들의 삶을 개선했다. 자유 대한민국의 기초를 놓았다는 평가를 부인하기 어렵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민주화 세력을 탄압했지만 산업화의 초석을 놓았다. 한국이 오늘날 선진국이 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인생 궤적에는 공과 과가 모두 있다. 공은 무시하고 과를 과대평가하며 청산을 외치는 건 공정하지 않다.

보수·진보 진영 간 갈등이 한국처럼 심한 나라는 없다. 사회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최대 246조원에 달한다. 이 지경이 됐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하는데 책무를 방기한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밝힌 취임사는 빈말이었나.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구부러진 잣대를 들이대 깎아내리는 것은 국가 자해행위다. 시급히 청산해야 할 적폐다. 과거 행적에 대한 편향된 공과평가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 한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없다. 미래 먹거리 산업과 미·중 패권경쟁 대응 전략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에 과거사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2년 이승만·박정희 묘소를 참배하며 “두 분이 남긴 공적만 생각하자.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고 했다. 과거 행적에 대한 정쟁으로 국가분열을 조장하지 말라는 고언이다. 진보 진영은 새겨듣고 최우선의 실천과제로 삼기 바란다.

세계가 경탄하는 선진국 대한민국은 산업화·민주화 세력의 합작품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선순환 결과다. 보수·진보 진영은 국가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 애국자들이다. 모두가 승자인 만큼 무의미한 공적 다툼을 접고 미래를 위해 협력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김환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