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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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겸 화가 ‘아트테이너’ 시대… 예술의 경계선을 묻다

전문가에게 듣는 당신이 궁금한 3가지
인지도 활용해 행사 홍보하려는 업체들… SNS 팔로어 수 많을수록 영향력도 커
라이선스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비평 단계 안 거쳐… 비슷한 아류 많아
스타성은 조변석개하는 신기루 같은 것… 팬덤으로 살 수 있지만 투자용은 물음표

“식당 다음으로 많은 부업이 화가인 것 같다.”

최근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직장인 A씨의 말이다. 연예인 겸 화가, 일명 ‘아트테이너’ 원조 격인 가수 조영남부터 시작하는 계보는 최근 더욱 급증한 모습이다. 이혜영, 구준엽, 임혁필, 하정우, 구혜선, 나얼, 솔비 등에 이어 최근에는 박기웅, 하지원 등이 아트페어에 나오고 전시를 열며 아트테이너 대열에 합류했다. A씨는 미디어에 쏟아지는 아트테이너들의 뉴스에 이들은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지, 소질이 있는지, 따로 배우는 곳이 있는지, 정말 ‘작품’으로 보고 매매할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최근 미술품 수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같은 궁금증을 갖는 이가 많다. 회원이 약 8000명에 달하는 네이버 카페 ‘직장인 컬렉터되다’에도 아트테이너를 어떻게 봐야 할지 묻는 질문이 올라오기도 한다. 다양한 전문가들에게 아트테이너 세계에 대해 물어봤다.

 

배우를 겸하고 있는 백현진 작가는 작품에 대한 오랜 연구가 뒷받침돼 있고 호평을 받는 사례다.지난 6월 서울 종로구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린 백 작가의 개인전 ‘말보다는’ 전시 전경.
PKM갤러리 제공

◆왜 많아졌을까?

 

“미술시장이 미쳤다.” 기자가 화랑가에서 연이틀 들은 말이다. 거장들 작품을 사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물건을 구하는 게 어렵다고들 아우성이다. ‘돈 된다더라’는 얘기가 파다하니 연예인 개인을 떠나, 그들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사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이들을 통한 작품 ‘공급’이 많아지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이런 이점을 안 일부 화랑이나 아트페어들이 호응하며 아트테이너 등장과 노출은 더 많아졌다. 새로운 작품 공급을 위해 아트테이너들의 작품에 시선을 돌린 일부 화랑들, 연예인 인지도를 발판으로 행사를 홍보하려는 아트페어 등 행사 주최 측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한 유력 큐레이터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니 홍보성으로 아트테이너를 많이 내세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매체 환경도 꼽힌다. 이 큐레이터는 “단지 미술뿐이 아니라, 요즘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에서 팔로어 숫자가 많은 사람이 어디서든지 여러 가지로 혜택을 받는 시기인 것 같다”며 “팔로어 수가 많은 집단인 만큼, 작가 활동을 하기에도 일반 작가보다 훨씬 쉬워서 접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진짜 잘하나?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트테이너들을 모두 진짜 작가라고 할 만한지 묻자 정준모 평론가가 답한 말이다.

 

미술하는 ‘작가’에는 자격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미대 졸업장이 곧 라이선스도 아니다. 어린시절부터 화가를 꿈꿨다며 진정성을 강조하는 아트테이너, 미대를 졸업했고 기본기가 좋다고 강조하는 아트테이너들도 있다.

 

다만 작품의 질과 ‘작가’라는 말의 무게감을 생각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취미를 넘어 작가임을 자처하는 상황이 ‘남발’되는 모습에는 신랄하게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한 갤러리스트는 “누구나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고 그것이 완벽하다고 느껴질 때 대중에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연예인들의 작업이 시장을 압도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고 작업의 시작도 본인의 일상 탈출, 또는 우울함 극복 등 한심한 이야기들뿐”이라고 말했다. 이 갤러리스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건 시장이고, 시장에서 꾸준하게 인정받고 작품이 판매된다면 작가로 인정받는 것이지만,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표했다. 서울 주요 갤러리에서 일하는 한 큐레이터 역시 “누가 경매에서 얼마에 낙찰됐다는 게 화제가 되곤 하지만, 이름을 빼고 작품만 놓고 본다면 그래도 그 가격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모 평론가는 근본적으로 비평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을 한계로 꼽았다. 그는 “물론 (정규교육의) 제약 없이 더 창의적이고 새로운 것을 할 여지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아니다. 본인들로서는 새로운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솔직히 어디서 본 듯한, 누군가의 아류인 게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실력이 있고 없고를 논하기 전에, 비평 단계를 거치지 않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프로 화가라면 적어도 그들의 그림이 비평의 언어로 서술돼 본 적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프로 작가들은 수준 있는 평론글을 받아 자신의 도록에 싣기 위해 노력한다. 수년간 작품의 변화, 발전에 대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비평이 쌓이고 ‘작가론’이 형성되는데 이런 사례를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홍경한 평론가는 “예술성만 놓고 보면 퀘스천마크가 상당히 많은 게 대부분”이라며 “홍보 마케팅 시스템과 미디어를 통해 과대포장된 보도가 많은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사도 되나?

 

연예인 겸업 화가들의 작품은 주로 팬과 동료연예인들이 구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미술계는 아트테이너의 작품이 거래되는 시장은 기존 미술시장과는 다른, 별도의 시장으로 여긴다. 이제 막 미술시장에 접근하고 있는 초보 컬렉터라면,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접근해야 한다.

 

홍경한 평론가는 “기존 미술신에서 소비되는 층과 연예인들의 작품을 소유욕을 갖고 구입하는 사람들의 층위는 다르다”며 “예전 주윤발, 왕조현 책갈피를 문구점에서 팔던 것이 내가 흠모하는 대상을 아주 저렴하게 옆에 두고자 하는 욕망을 기반으로 하는 것처럼, 선망의 대상에 대해 일정한 예산을 투입해 접근하고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아트테이너 시장도 그와 비슷하다”고 했다.

 

그는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마치 미술 유통망 전부로 오해해선 안 된다. 스타성이라는 것도 조변석개하는 신기루이며, 마케팅 환상을 걷어내고 옥석을 가리는 눈도 키워야 한다. 내가 보고 싶어서 접근하는 건지, 투자용으로 접근하는 건지에 대한 명료한 입장정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준모 평론가는 “연예인 그림을 팬덤으로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나중에 책임을 다른 데에 물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밥 한 끼 먹으러 식당을 갈 때에도 얼마나 골라서 가는 세상이냐”며 “그림을 살 때에도 미술의 가치를 제대로 다루는 갤러리, 작가, 작품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