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 형법 제328조(친족 간의 범행과 고소)에 규정된 특례 원칙이다. 형사 원칙인 만큼 모든 개별 범죄에 준용된다. 친족상도례 원칙은 ‘친족 사이에 벌어진 재산상 위법행위는 그 형을 면제한다’는 것이 골자다.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고대 로마법 정신의 흔적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①직계혈족(존·비속), 배우자, 동거 중인 친족, 동거 중인 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의 (재산범)죄는 그 형을 면제한다. ②그 외의 친족 간의 죄는 고소권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여기서 친족은 8촌 이내 혈족과 4촌 이내 인척, 배우자를 말한다. 재산범죄는 사기·공갈·절도·횡령·배임·권리행사방해·장물(강도·손괴는 제외) 등 7개 범죄다.
‘이런 법이 있었어?’란 의문이 들 수 있다. 이 법은 1953년 형법과 함께 제정돼 칠순을 바라보고 있다. 과거 농경시대와 대가족제도를 배경으로 면책범위를 넉넉히 준 것이 특징이다. 당시는 가족이나 친족 내 큰어른에게 갈등을 중재할 권위도 있었다. 하지만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로 대가족은 해체됐고 가족의 개념과 형태는 크게 달라졌다. 그런데도 ①항은 2005년, ②항은 1995년에 개정된 게 마지막이다.
특례가 단순히 ‘시대착오적’이란 것이 아니다. 범죄를 예방하고 단죄해야 할 형법이 악질적 범죄의 ‘면죄부’로 악용되는 현실에 관한 우려다. 자녀가 노부모 재산을 절도하거나 횡령하고, 부모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배우자 몰래 이혼을 계획하고 배우자 재산까지 빼돌리거나 훔쳐 다른 가정을 꾸리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장애가 있는 친족을 착취하고 재산을 갈취하는 사건도 마찬가지다.
모성준 판사는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의 문제점과 바람직한 개정 방향’ 보고서에서 “법원에 있는 사건들 중 민사, 형사, 가사를 가리지 않고 친족 간 재산분쟁에서 비롯된 사건이 적지 않다”며 “가족 구성원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갖는 게 쉽지 않고,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분쟁의 대상인 재산 가치가 큰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법이 문지방 앞에서 멈춘들,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당신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난 무서울 게 없다는 식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피해자들이 피해 구제, 회복을 위해 선택할 길은 민사소송뿐이지만 승소한들 상대가 재산을 은닉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려운 경제 여건을 반증하듯 주요 범죄 가운데 재산범죄만 상승세란 점도 걱정을 더한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는 서민경제와 취약계층을 참담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가족 간 범행의 주요 원인은 ‘불화’다. ‘정신질환’을 빼면 불화 다음이 ‘경제문제’다.
이제는 위 특례를 재고해야 한다. 단순히 가족·친인척 관계란 이유로 처벌을 원천차단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반의사불벌죄나 친고죄 등으로 피해자 선택권을 넓히자고 제안한다. 반의사불벌죄의 경우 처벌을 불원해 불화를 해결할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아예 금액이 크거나 죄질이 중하면 처벌하자는 의견도 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했다. 헌법이 명시한 국가의 존재 목적이다. 그런데 이 권력을 나눠 받아든 입법·사법·행정부 행태를 보고 있자니 답답하고 언짢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월 취임사에서 “시대 변화에 맞게 법과 제도를 신속히 정비해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족상도례는 현실에 맞는 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