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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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 이어 탈레반과 대결… 아프간 ‘영웅의 아들’ 최후의 항전 [세계는 지금]

아버지 발자취 따르는 마수드

반군 사령관 아버지, 소련·탈레반과 전쟁
9·11테러 직전 알카에다 조직원에 피살
장성한 아들 아프간 장악 탈레반에 맞서
살레 전 부통령·지아 전 참모총장 등 동참
정부군·특수부대원 등 병력 9000명 집결

거점 판지시르 계곡 120㎞ 뻗은 천연요새
1980년대 소련군 2만명 9차례 공격 실패
미군 완전 철수 후 탈레반과 본격 교전
무기·탄약 보급, 마수드 경험 부족 걸림돌
마수드, WP 기고서 “서방 군수지원 절실”
아프가니스탄 북부 판지시르에 탈레반에 대항하는 최후 거점을 마련한 저항군 대원들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군사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판지시르=AFP연합뉴스

2001년 9월 9일 아랍계 벨기에 방송기자들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아프가니스탄 북부 타카르주를 찾았다. 그들이 만나기를 원한 인물은 아마드 샤 마수드. 아프간 북동부 판지시르 계곡을 거점으로 삼아 1980년대에는 소련과, 1990년대에는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과 맞서 싸운 반군 사령관이었다.

인터뷰를 막 시작하려는 찰나, 카메라와 배터리팩이 폭발했다. 그들은 사실 기자가 아니라 알카에다 조직원이었다. 알카에다는 이렇게 탈레반 정권의 눈엣가시를 제거했다. 탈레반에게 선물을 안기며 일종의 보험을 들어둔 것이었다.

이틀 뒤, 세계는 격변했다. 알카에다는 미국 심장부를 겨냥해 전대미문의 테러를 감행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탈레반 정권에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라덴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탈레반은 거절했다. 10월7일 미국은 아프간을 침공했다. 미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의 서막이었다.

◆판지시르에서 꿈틀대는 저항

전쟁은 무려 20년 만에 끝이 났다. 미국이 8월 내 완전 철군을 목표로 5월부터 병력을 철수시키자 탈레반은 급속도로 아프간 전역을 장악해 나갔다. 아프간 정부군은 추풍낙엽처럼 무너졌다. 지난달 6일 남서부 님루즈주 주도 자란즈를 처음 접수한 탈레반은 열흘도 채 안 돼 34개 주도 대부분을 장악했다. 막판에는 저항도 거의 받지 않았다.

탈레반은 지난달 15일 수도 카불에까지 무혈입성했다. 탈레반이 20년 만에 정권을 탈환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판지시르에서 다시 저항의 싹이 움트면서 이곳 계곡이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샤 마수드가 암살당할 때 12세였던 아들 아마드 마수드(32)를 중심으로 암룰라 살레 전 부통령과 비스밀라 모하마디 전 국방장관 대행, 야신 지아 전 참모총장 등이 이곳에 모였다. ‘민족저항전선’(NRF)이라는 이름의 이들 세력에는 아버지 마수드 시절부터 함께해 온 무자헤딘(아프간 반군 게릴라) 지휘관들과 현지 민병대원 말고도 탈레반 공세에 달아난 상관들에게 혐오를 느낀 정부군과 특수부대원들도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24에 따르면 알리 마이삼 나자리 NRF 대변인은 “마수드가 약 9000명의 병력을 집결시켰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서 지난 1일(현지시간) 탈레반 대원들이 아프간전 승리를 자축하며 차량에 탈레반 깃발을 꽂고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칸다하르=AFP연합뉴스

마수드는 지난달 18일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나는 다시 한 번 탈레반과 대결할 준비가 된 무자헤딘 전사들과 함께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르려 한다”며 “우리는 이런 날이 올 것에 대비해 아버지 시대부터 꾸준하게 비축해온 탄약과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민족저항전선(NRF)을 이끄는 아마드 마수드(32)

◆영웅 서사가 흐르는 천연요새

판지시르 계곡은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북동쪽으로 48㎞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다. 카불에서 계곡 입구로 들어서기 직전에 1950년대 소련이 만들고 훗날 미군이 이용했던 바그람 공군기지가 있다. 입구 북쪽으로는 북부 대도시 쿤두즈와 마자르이샤리프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난 전략적 요충지다.

120㎞가량 뻗은 계곡은 약 3000m 높이의 험준한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동쪽으로 더 들어가면 힌두쿠시산맥이 나온다. 암벽 사이로 구불구불한 강을 따라 난 길이 유일한 진입로다.

아프간 육군 장성의 아들로 태어난 아버지 마수드는 천연요새나 다름없는 이곳 지형을 활용해 1979년 아프간을 침공한 소련군에 치명상을 안겼다. 소련군은 카불로 향하는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 1980∼1985년 판지시르 계곡에 2만 병력을 투입하며 아홉 차례 대대적 공세를 펼쳤으나, 마수드군의 매복 공격과 성동격서 전략에 번번이 패퇴했다. 계곡 곳곳에는 격추된 전투기와 탱크 잔해 등 소련군 패배의 유산이 남았다. 영국 리즈대 엘리자베스 리크 교수는 BBC에 “그는 카리스마가 있었고 서방 언론도 잘 활용했다. 소련조차 그와는 기꺼이 협상하려고 했다”며 “그는 저항의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판지시르의 사자’라 불리던 마수드는 1992년 카불 공산정권 붕괴 후 국방장관으로 임명된다. 그러나 ‘공동의 적’이 사라진 군벌들은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기 시작했다. 마수드는 판지시르로 후퇴해 ‘북부동맹’을 결성했다. 탈레반과는 앙숙 관계였다. 그는 1996년 집권한 탈레반을 아프간 전통에서 벗어난 근본주의·전체주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전투를 벌였다.

그가 암살된 후 북부동맹 잔존세력은 미군의 탈레반 정권 축출을 도왔다. 이후 아프간 정부는 판지시르를 주로 승격하고 마수드가 숨진 9월9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그의 사진이 붙은 광고판이 판지시르와 카불 곳곳에 세워졌을 만큼 마수드는 ‘국민 영웅’ 대접을 받았다.

◆1980·90년대와는 다르다

NRF에는 여전히 판지시르의 험준한 지형이 있다. 정신적 구심점이 돼줄 마수드 가문의 혈통도 있다. 그러나 아들 마수드는 아직 군사 지도자로서, 탈레반의 적수로서 역량을 검증받지 못했다. 2016년 아프간으로 귀국하기 전 영국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서 1년간 훈련을 받은 것이 군사적 경험의 거의 전부다.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을 장악한 가운데 지난 1일(현지시간) 반(反)탈레반 저항군이 북부 판지시르주의 아나바 지역을 순찰하다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판지시르=AFP연합뉴스

가장 큰 문제는 무기·탄약 보급이다. 사실 마수드가 WP에 실은 기고문의 핵심은 ‘탈레반과 장기간 맞서 싸우려면 서방의 군수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었다. 아프간 정부군 대령 출신으로 NRF에 합류한 하미드 사이피는 뉴욕타임스(NYT)에 “우리는 지원을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껏 우리와 대화한 모든 국가가 조용하다”고 토로했다. 판지시르 주민들과 같은 타지크족인 타지키스탄이 무기, 장비 등을 지원했다는 일부 인도 언론의 보도가 있었으나, 타지키스탄 외무장관은 이를 부인했다.

NYT는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기 전 판지시르를 고립시켰다고 전했다. 1990년대의 교훈을 잊지 않았던 셈이다. 라마툴라 나빌 전 아프간 국가안보국(NDS) 국장은 “아버지 마수드는 탈레반과 싸울 당시 러시아, 인도, 이란, 타지키스탄으로부터 제한적이나마 지원을 받았지만, 아들은 경험도, 외부 지원도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믹 멀로이 전 미 국방부 중동 담당 차관보도 “지금은 1996년과는 다른 게임이라고 생각한다”며 “탈레반은 수십억달러 규모의 무기와 장비를 획득했고, 모멘텀을 확보했다”고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말했다.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대원으로 아프간에 파병됐다가 한쪽 눈을 잃은 공화당 댄 크렌쇼 연방하원 의원은 동료 의원 5명과 함께 마수드 세력을 ‘망명정부’로 칭하며 지원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자칫 NRF를 지원했다가 탈레반을 자극하면 ‘미군과 국제동맹군이 모두 철수하는 대신 아프간이 국제 테러조직의 안식처로 활용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한 미·탈레반 평화합의의 약속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어서다. 아프간을 또 다른 폭력과 혼란의 시대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반대로 지원을 거부하면 탈레반의 잔혹·강압 통치를 방관한다는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이 조성될 수 있다.

미국 공화당 댄 크렌쇼 연방하원 의원. AFP연합뉴스

◆전투냐 협상이냐

NRF의 결사항전 예고가 새 정부에서 지분을 최대한 얻기 위한 지렛대라는 시각도 있다. 탈레반 세력 기반인 파슈툰은 아프간 전체 인구의 42%를 차지하는 최대 종족이지만, NRF 주축인 타지크도 27%나 된다. 이밖에 하자라(9%), 우즈베크(9%) 등 여러 종족이 있다.

마수드의 비서실장인 파힘 다슈티는 “평화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협상할 수 있다”며 “우리는 아프간 내 모든 종족을 대표하는 포괄적 정부 구성과 인권과 여성 권리, 사회정의의 가치를 확실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과거 아버지 마수드가 탈레반에게 촉구했던 것과 같은 ‘여러 민족을 포괄하는 온건 이슬람 통치’를 다시 주장하고 나선 셈이다. 우즈베크족 군벌 출신 압둘 라시드 도스툼 전 부통령 등도 “소수민족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통치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탈레반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힘을 보태고 나섰다.

탈레반도 공식적으로는 여러 종족 지도자를 아우르는 과도정부 구성을 약속했고, NRF와도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을 장악한 가운데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반(反)탈레반 저항군이 북부 판지시르주 바자락 지역에서 탱크를 타고 순찰하고 있다. 판지시르=AFP연합뉴스

그러나 미군이 완전 철수하고 협상도 결렬되자 탈레반은 기다렸다는 듯 공격에 나섰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2일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에 “판지시르 11개 검문소를 점령했고 저항군 34명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NRF 측은 “쇼툴 쪽으로 수차례 진입을 시도한 적을 격퇴했으며 우리가 모든 길목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날 전투에서 탈레반 대원 115명이 사망하고 최소 35명이 포로로 붙잡혔다는 인도 언론 보도도 나오는 등 양측 피해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