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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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반년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與, 공방 휩쓸려 정책 검증 실종
野, 경선 룰 내부갈등 후유증 커
국정 철학·비전부터 제시해야

내년 3월9일 실시되는 20대 대통령 선거가 반년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 팬데믹, 기후변화, 미·중 패권경쟁, 저출산·고령화, 사회 양극화 등 나라 안팎의 위기 요인이 산적한 상황에서 5년간 국정을 이끌어 나갈 지도자를 선택하는 중요한 선거다. 정치권은 대선후보 경선에 몰입하고 있지만 일반 유권자들의 관심은 예전과 달리 좀체 뜨거워지지 않고 있다. 경선 후보들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탓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역 순회 경선을 벌이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전·충남, 세종·충북에서 잇달아 과반 득표한 여세를 몰아 64만여명의 국민·일반당원 투표 결과가 한꺼번에 공개되는 12일 1차 슈퍼위크까지 압도하면 대세론을 굳힐 수 있다. 이를 노리고 온갖 정책 구상을 쏟아내지만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다. 이 지사의 경쟁자들이 벌써 포기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박완규 논설실장

야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역선택 방지 조항’ 도입 여부 등 경선 룰을 둘러싼 내부 갈등으로 정홍원 선거관리위원장의 사의 표명 번복 등 온갖 해프닝이 벌어졌다. 결국 선관위는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지 않는 대신 일반 여론조사 100%로 진행하려던 1차 컷오프(예비경선) 투표에 당원 투표 20%를 반영하는 절충안을 제시해 갈등을 봉합했지만 후유증이 크다. 이준석 당 대표의 리더십도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 선두주자였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처가 관련 의혹에 이어 총장 재임 시절 대검의 ‘여권 인사 고발 사주 의혹’이 불거진 데다 당내 경쟁 후보들의 집중 견제를 받아 지지율이 답보 상태다.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들 간 공방이 말꼬리 잡기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치의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후보들이 자신만의 국정운영 철학이나 비전을 분명하게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현 시점에서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어떤 모습으로 바꾸어 놓을지에 대한 구상을 제시하는 것은 기본 아닌가. 일부 경선 후보들은 각종 의혹이나 네거티브 공세에 휘말려 이에 대처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니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과 학계에서는 우리 민주주의 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갑론을박이 무성하지만, 정작 여야 후보들 사이에서 정치 개혁과 혁신을 외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시급한데도 이를 외면하고 있다. 개헌으로 권력구조를 바꾸는 일이 당장에 어렵다면 대통령 비서실이라도 개편해 청와대 정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궁리를 해야 할 때다.

정치학자 임혁백은 저서 ‘민주주의의 발전과 위기’에서 “선제적이고 지속적인 민주주의 제도의 혁신은 우리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한다. “적절한 제도적 혁신을 제때 하지 못하면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실망으로 변하고, 실망이 분노로 표현되면 우리 국민들도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거나 전복시키려는 세력의 선동에 대거 동참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후보들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다. 당이 나서야 한다. 당의 미래가 달려 있다. 강원택은 영국 자유당의 부침을 다룬 ‘정당은 어떻게 몰락하나’에서 “정당이 시대적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노력, 항상 깨어 있어 변화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한 정치 세력의 정치적 운명은 급격하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며 “그 몰락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 것”이라고 했다. 유권자들의 신뢰를 잃어가는 여야 정치권이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말이다.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추석 연휴에 민심을 휘어잡으려면 후보들과 당이 한 팀이 돼야 한다. 후보들은 각자의 진영을 재점검하고 캠페인 전략 등을 다시 짜기 바란다. 후보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당이 관여해야 한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국민들을 포용하면서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나라의 앞날이 걸린 일이다. 정치권 모두 공멸을 피하려면 이제라도 신발끈을 단단히 매야 한다.


박완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