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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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아이 낳고 싶은 사회

최근 약 2주 동안 스웨덴을 방문했다. 사회 이동성 지수 최상위국들이 가진 ‘공정사회’의 면모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스웨덴의 비결은 성평등이었는데, 이 점이 육아 친화적인 사회를 만들고 있음을 실감했다.

 

출장 내내 육아휴직 중인 아빠를 수시로 만났고, 어딜 가든 유아차나 아동을 태우는 자전거가 있었다.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하면서도 가족 중심 문화가 발달했다는 점 역시 흥미로웠다. 이곳의 가족은 가부장이 아닌 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한 지위와 책임을 부여하는 ‘개인주의적 가족’이다. 스웨덴에서는 가장에게 권위를 몰아주거나 자식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는다고 했다. 일하는 것과 양육, 가사노동은 모두 가족 구성원이 역할을 바꿔가며 하는 것이며, 동등하게 부담할수록 이상적이라고 여긴다.

정지혜 사회2부 기자

가정 내 수평적 문화로 인해 돈 벌어오는 사람과 집안일 하는 사람 간 위계가 없다는 점 역시 역할 바꾸기에 대한 거부감을 덜어준 듯 보인다. 한 사람이 일만 하고, 한 사람이 집에서 양육과 가사만 맡는 것은 ‘비효율적인 시스템 아니냐’고도 했다. 집안일을 도맡는 사람은 경력이 단절되고, 나가서 일만 하는 사람은 아이와 친밀감을 쌓고 가사에 관여할 선택지를 빼앗긴다는 이유에서다.

 

개인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한국 사회 분위기는 어찌 보면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불이익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통적 성역할론이 굳건한 사회는 인적자원 일부를 반드시 낭비하기 마련이다. 역량이 뛰어난 여성과 집에서 더 훌륭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남성의 잠재력을 사장시킨다는 측면에서다.

 

스웨덴도 원래부터 성평등한 사회는 아니었다. 현재 스웨덴의 5060 부모세대만 해도 한국처럼 전통적인 성역할론이 당연했다고 한다. 하지만 스웨덴은 사회의 발전과 시민의 행복을 위해 대대적인 성역할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인식했고, 제도를 손보기 시작했다.

 

한국의 출산율이 4.5명 수준이던 1970년대 스웨덴의 출산율은 1.5명이었다. 충격에 빠진 스웨덴 정부는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를 도입했다. 시행 초기 남성들이 참여하지 않자 정부는 참여율이 높아질 때까지 여러 차례 제도를 개혁하고 아빠 육아 캠페인을 벌였다. 이번에 방문한 공공유치원에도 아빠가 아이를 안고 있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에 시민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라떼파파’(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아빠의 육아 참여가 당연해졌고, 여성들은 경력 단절 걱정 없이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여성의 사회 참여율 79.8%로 세계 1위인 스웨덴은 합계출산율(2019년 1.7명)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1세기에 ‘아이 낳기 좋은 사회’란 성평등 국가에서 누릴 수 있는 결실이 아닐까 싶다. 이곳의 높은 성평등 지수에 기여한 개인주의, 여성의 자립을 장려하는 분위기 등은 역설적으로 가족의 지속가능성을 높였다. 보육정책은 남성을 주 양육자로 참여시키고, 공공탁아소는 보조 역할을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신혼부부에 각종 특혜를 주거나 아이를 낳았다고 현금을 살포하는 식의 임시방편이 아닌 근본적 변화를 꾀한 것이다. 이런 배경이 모여 육아에 ‘진심’인 사회가 만들어진 셈이다. 우리도 변화를 원한다면 환경부터 조성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정지혜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