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원요? 그게 뭔가요? 학원 같은 건가요?” -충주, 여 53세-
“내가 정말 치사해서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요. 진짜 너무들 하는 거 같아요. … 거기 계신 어른들 대부분 대학교수 출신이잖아요? (…) 대학교수로 정년퇴직해서 매달 300만원, 400만원 사학연금 받으시는 분들이 예술원 회원이 돼서 거기에 또 매달 180만원씩 더 받아가시는 거예요.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을…” -소설가 A (남, 49세)-
예술원 개혁 목소리는 이전부터 다양하게 존재했다. 가장 최근에는 2017년 5월 ‘적폐청산’을 내걸고 갓 출범한 문재인정부에 이재무 시인이 언론 지면을 통해 “(문학분야) 회원 중에는 실력 있는 문인들도 있지만 일부는 작품의 수준 등에서 자격 미달도 있다. 이들은 국회의원이 또 국회의원을 뽑는 식으로 서로 담합해 회원을 뽑는다”며 “이 때문에 젊은 시인들의 분노가 쌓이고 있다. 문학계의 가장 큰 문제를 이것이라고 보고 문제 해결에 정부가 나서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을 정도다.
예술가 생활이 더 고단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 시대에 예술원을 향한 비판 목소리는 커졌다. 특히 이기호 작가는 소설뿐만 아니라 청와대 국민청원, 그리고 동료 문인 앞으로 쓴 공개서한을 통해서 예술원 개혁 요구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젊은 예술가들은 생활고에 허덕이는데 원로들은 월 180만원씩 또박또박 타는 현실이 분배 정의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예술원 사업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술원 회원에 대한 정액수당 지급, 그리고 또 하나는 ‘대한민국예술원상’에 대한 선정과 시상. 이 두 가지가 예술원 예산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말하자면 사업이 회원들에게 ‘정액수당’을 지급하는 일인 것입니다…. ‘공적이 현저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기존의 예술원 회원…, 아무리 시를 잘 쓰고 소설을 잘 써도 예술원 회원과 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예술원 회원 중엔 아동문학 쪽 문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쪽과는 친분이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 또 노태우 정권 때 회원이 된 시인 한 분은 벌써 30년째 이 정액수당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불투명하고 폐쇄적인 예술원 운영방식은 여러 문제가 제기된다. ‘끼리끼리’ 회원 선출 문제는 오랜 기간 숱한 시빗거리를 만들었는데 이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연극계 중진 인사는 “예술원 문제에 대해선 말하기 조심스럽다”면서도 “신입으로 들어가려면 마치 선거운동처럼 여러 일을 하는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토지’ 작가 박경리도 생전에 예술원 가입을 거절한 걸로 잘 알려져 있는데 한 원로문인이 문예지에 소개한 사연에 따르면 만 65세가 넘었을 때 가입신청을 했으나 회원 투표에서 부결된 바 있다고 한다. 이후 ‘토지’가 각광을 받으면서 다시 예술원에서 가입을 권유하자 “내가 하고 싶어할 때는 거절하고 이제 다시 신청하라고요? 나 안 합니다”라고 거절했다는 것이다.
여러 차례 낙방하다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원로배우 백성희는 예술원보 2014년 58호에 실린 ‘독백’이란 글을 통해 “김동원 선생님께서 나를 예술원 회원에 추천하셨는데 낙선이 됐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추천, 다음 해에도 낙선이 됐다. 낙선 횟수가 늘어나자 연극계에서 이런저런 여론이 일었다”며 “세상을 모르고 살아온 하나의 백로가 까마귀들에게 이리저리 밀렸던 그때의 아픔이 이제는 가슴속의 얼룩이로 남아 있게 됐기 때문”이라고 적었을 정도다.
예술원 회원 임기 역시 70대였던 정년제는 없어진 지 오래이고 4년 임기를 계속 연임하던 관행이 심지어 2019년에는 종신제로 굳어졌다. 사회적 책임감과 위상을 제고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부조리한 저작권 관행 때문에 2020 이상문학상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던 이기호 작가의 예술원 개혁 요구 동참 호소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설가 이순원은 기고문을 통해 “누구보다 지원이 절실한 전업작가들도 남보다 조금 더 알려지면 자기보다 어려운 동료 후배 작가들을 생각해 지원 신청을 자제한다. 그러나 예술원은 이제까지 오히려 자신들의 이득과 탐욕을 키워왔다. 과거 2005∼2006년 ‘우수예술인 발굴 지원’ 하던 것을 폐지하고, 2006년부터 2021년까지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예술원 회원만의 예술활동 지원을 시행해 왔다. 그나마 외부 작가에게 주는 ‘대한민국예술원상’도 올해 문학 부문은 예술원 회원의 동생에게 1억원을 주었다. 이쯤 되면 특권이 아니라 나라 세금에 대한 범죄 수준이 아닌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17일 한국문화예술위 산하 현장소통위도 예술원 개혁 논의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19일에는 국내 문단 주류로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한국작가회의 역시 성명을 통해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들이 국민들과 작가들 대다수가 존경하는 분들로만 구성되어 있는가에 대해서는 몹시 회의적이다. 그러므로 예술원의 혁신은 필요하며 예술원의 환골탈태는 시대적 요청”이라며 예술원 위상·역할 재정립 등을 요구했다.
문단에서 시작된 예술원 개혁 요구는 음악·무용·연극 등 다른 분야로도 확산 중이다. 25일 나온 ‘대한민국예술원법 개정을 요구하는 문인 성명서에는 문인 744명과 함께 다른 분야 예술인 329명이 참여했다.
개혁 초점은 회원이 회원을 뽑는 현행 선출방식을 외부추천위 추천·심의 등으로 바꾸고, 현행 종신 임기제를 4년 단임제 등으로 바꾸는 방안으로 모아진다. 이미 국회에는 신입 회원 선출을 기존 회원 5명 이하, 총 15인으로 구성하는 위원회에서 맡도록 하는 내용의 예술원법 개정안이 지난 9일 발의됐다.
정액수당 존폐 논쟁도 뜨겁다. 이와 관련해 예술원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두어 차례 예술원 발전방안을 용역연구했는데, 2016년 관련 보고서는 “해외의 유사 기관의 경우 회원 예우 방식은 회원이 되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있으며 일종의 명예직이라고 인식된다. 또한 일본 예술원을 제외하고는 정액수당을 통한 회원 예우는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이기호 작가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예술가 지원이 좀 더 형평성 있게 공정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라며 “특히 미술 쪽에선 이번에 서명작업하면서 ‘이분이 왜 예술원 회원이지’라는 의문, 불만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정답은 그분들 스스로 (개혁)하는 게 맞습니다. 사실 저희도 가장 크게 바랐고 그런 움직임이 생겨날 것이라고 예상을 했는데…, 응답이 없으셨고요. 어떤 경로라도 저희가 잘못 알고 있거나 저희 의견에 대한 반대, 비판이 있다면 서로 대화들이 오갈 수 있었을 텐데…,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지금처럼 예술원에 대한 비판이 나왔을 때 예술원 회원들이 했던 행동이 늘 ‘침묵’이었답니다. 그래서 그 국면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모양새로 여태까지 계속 이어져 왔대요. 그중에서 몇분이라도 다른 의견을 낼 수도 있을 텐데 전혀 그런 게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