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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BM이 나타났다”… 동북아 뒤흔들 ‘게임체인저’ 등장 [박수찬의 軍]

우리나라가 자체 개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잠수함 발사시험이 15일 성공했다. 사진은 SLBM이 하늘로 치솟는 모습. 국방부 제공

게임체인저(Game Changer). 어떤 일에서 결과나 흐름의 판도를 뒤바꿔 놓을 중요한 역할을 일컫는다. 군사 분야에서는 전통적 개념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위협하는 무기나 전략을 가리킨다.

 

지난달 13일 해군에 인도된 국산 3000t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장보고-Ⅲ 배치Ⅰ), 지난 15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한국군이 확보한 ‘해양 게임체인저’다. 

 

외부 산소공급 없이 최대 3주까지 잠항할 수 있는 공기불요장치(AIP)와 수직발사관, SLBM을 결합한 도산안창호함은 ‘탄도미사일을 탑재하려면 대형 핵추진잠수함이 필요하다’는 기존 관념을 바꿨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핵추진 체계 탑재를 추구하지 않고도 해군에 새로운 전략적 타격 능력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실전배치됨 3000t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 해군 제공

◆현대식 AIP 잠수함에 탄도미사일 탑재한 첫 사례

 

일반적으로 트라이던트(미국), JL-3(중국), M51(프랑스), 불라바(러시아) 등을 비롯한 SLBM은 핵보유국이 운용하는 핵추진잠수함에 탑재된다. 

 

크고 무거운 탄도미사일을 적에게 포착되지 않은 채 오랜 기간 안전하게 싣고 다니려면 핵추진잠수함이 필수라는 인식은 세계 각국 해군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디젤잠수함들이 어뢰와 대함미사일, 기뢰 등 전술적 차원의 무기만 탑재했던 것도 이같은 인식이 큰 이유였다.

 

하지만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에서 AIP 체계가 등장하고, 디젤잠수함도 대형화되면서 순항미사일을 탑재하는 사례가 조금씩 늘어났다.

 

파키스탄은 바부르 순항미사일, 이스라엘은 해브납 미사일을 잠수함에서 사용한다.

 

수중에서 미 해군 트라이던트 SLBM이 수면 위로 솟아오르고 있다. 미 해군 제공

하지만 SLBM은 여전히 핵추진잠수함의 영역으로 남아있었다. 중국이 청급 디젤잠수함에 SLBM을 장착했지만, 핵추진잠수함 탑재 전 기술적 신뢰성을 검증하는 용도에 가까웠다.

 

도산안창호함은 이같은 고정관념을 깨뜨린 첫 전투용 잠수함이다. 

 

기존 디젤잠수함이 전술적 차원의 수중 작전만 가능했다면, 도산안창호함은 SLBM을 통해 핵추진잠수함의 전략적 이점을 제한적이나마 제공할 수 있다.

 

순항미사일은 탄도미사일에 비해 정확도는 높지만, 속도가 느리고 저고도로 비행해 적 방공망에 요격될 가능성이 있다. 탄두 중량도 작다. 

 

반면 SLBM은 순항미사일에 비해 낙하 속도가 빠르고 파괴력이 크다. 풀업 기동(하강단계서 상승 및 활강)을 실시하면 적의 요격시도를 회피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자체 개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잠수함 발사시험이 15일 성공했다. 이날 실시된 SLBM의 잠수함 발사시험 성공은 세계 7번째다. 국방부 제공

한반도에서 SLBM은 새로운 대북 억제수단을 제공한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형태의 한반도에서 한국군이 북한의 공격에 맞서려면 남쪽에서 북쪽으로 반격을 가해야 한다. 

 

K-9 자주포부터 F-35A 스텔스 전투기까지 모든 전력이 북한군을 향해 공격을 감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육군과 공군의 활동 영역과 공역이 서로 겹칠 위험이 있다. 

 

육군 현무 탄도미사일이 날아가는 경로에 공군 F-15K 전투기가 있다면, 아군 간 충돌 위험이 높아진다. 공역은 제한되어 있는데 육군과 공군의 타격수단은 많다면, 유사시 제대로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도산안창호함이 활동할 바다는 SLBM 발사에 별다른 장애요소가 없다.

 

군 관계자는 “휴전선 일대와 더불어 서해, 동해에서도 SLBM으로 북한 내륙 지역을 타격할 수 있다. 한국군의 대북 억제력은 더욱 강화되고, 북한은 서해와 동해 방향에서의 공격 가능성도 경계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며 “SLBM은 한국군의 ‘숨은 비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해군 장보고-Ⅱ(214급) 잠수함 김좌진함이 항구에 정박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새로운 추세 선도·핵잠수함 건조 주장도 

 

정부와 군은 도산안창호함을 시작으로 SLBM을 탑재하는 장보고-Ⅲ 배치Ⅰ·Ⅱ 잠수함 6척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배치는 동일한 함정의 성능을 개량할 때, 이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다. 

 

배치-Ⅱ는 도산안창호함이 속해 있는 배치-Ⅰ에 비해 중량이 3600t으로 늘어났다.  중·대형 잠수함 중 세계 두 번째로 리튬전지를 탑재, 은밀성과 작전성능이 증대됐다. SLBM도 10발을 탑재한다.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AIP 탑재 잠수함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보고-Ⅲ 프로젝트가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면, 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도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인도는 차세대 AIP 탑재 잠수함인 P75I에 미사일을 실을 수 있는 수직발사관을 설치하려 하고 있다. 이스라엘도 최신 독일산 잠수함에 수직발사관 탑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보고-Ⅲ 프로젝트의 효과가 입증된다면, AIP 잠수함의 기본 능력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전략적 타격 능력을 확보하는 트렌드가 국제적으로 확산할 수 있다.

 

디젤잠수함의 전략적 타격력을 높이는 새로운 추세를 한국이 이끌 길이 열리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조기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도산안창호함은 AIP 체계를 이용해 장시간 잠항은 가능하나, 핵추진잠수함만큼은 아니다. SLBM의 최대 장점인 ‘바닷속에 숨어 있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 

 

현무-2B(사거리 500㎞)와 성능이 유사한 것으로 알려진 SLBM이 더 강한 위력을 발휘하려면 사거리를 늘려야 한다.

 

이는 직경과 길이의 증가로 이어진다. 대형 SLBM을 탑재하려면 대형 잠수함이 필요한데, 재래식 동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군 당국이 추진중인 장보고-Ⅲ 배치Ⅲ의 동력원으로 원자로 탑재가 결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과 영국, 호주가 새로운 안보 파트너십인 오커스(AUKUS)를 만들고, 미국과 영국이 호주의 핵추진잠수함 보유를 지원키로 하면서 한국도 핵추진잠수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도 있다.

 

전문가들은 핵추진잠수함 건조는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핵연료 확보다. 핵추진잠수함 운용을 위해서는 우라늄농축율이 최소 20%는 넘어야 한다. 이 정도 농축률은 군사적 목적에 해당된다.

 

한미 원자력협정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규정상 군사적 목적의 핵물질 사용은 제한되어 있다.

 

미 해군 전략핵추진잠수함 플로리다함이 항구에 입항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이같은 제약을 뛰어넘으려면 미국의 승인 또는 묵인이 필요하다. 실제로 호주는 미국, 영국과 함께 핵추진잠수함 보유를 위해 조만간 IAEA와 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미국과 영국의 외교적 지원이 있다면, IAEA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이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도울 분위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은 호주의 핵추진잠수함 보유 지원에 대해 “정책의 예외에 해당한다. 단 한 번 있는 일(one off)”이라고 강조했다.

 

미 해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수면 아래 잠수함에서 발사돼 솟아오르고 있다. 미 해군 제공

국방부는 “핵추진체계 탑재는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고, 해군도 경항공모함 전력화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핵추진잠수함 건조가 단기간 내 가시화되기는 어렵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도산안창호함과 SLBM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주변국 위협에 대한 억제력을 제공하는 ‘해양 게임체인저’로서 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