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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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전기요금 폭등’ 어떻게 읽어야 하나?

영국 160%, 프랑스 48%… 유럽 전기요금 폭등
천연가스·탄소 가격 급등 탓… 느려진 풍속도 원인
티머만스 “더 빨리 에너지 전환했다면 없었을 일”
재생에너지 회의론 대신 “더 빨리 확대하자” 목소리
전기료 환경부담금 독일 90원/㎾h, 한국 5.3원/㎾h
“야심찬 기후정책 추진하기에 한국 부담금 너무 낮아”

유럽이 전기요금 폭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올 들어 경기가 회복 국면에 접어 에너지 수요가 늘면서 전기 요금도 같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는데, 이달 들어 그 속도가 전에 없이 빨라졌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지난 15일 기준으로 전력 도매가격이 각각 36%와 48%가 올랐고, 영국은 160% 이상 뛰어올랐다. 천연가스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풍력 발전량이 급감한 게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모두 ‘탈석탄’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그렇지만 유럽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이번 유럽 전기요금 인상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현상부터 원인, 해결책까지 단계적으로 알아봤다.

 

1. 얼마나 올랐을까?: ㎿h에 540파운드… “겨울에 더 오른다”

 

지난 13일 영국의 전력 도매가격은 ㎿h(메가와트시) 당 540파운드(약 88만원)로 역대 최고가를 찍었다. 그 후로 조금 내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300∼400파운드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달 한국전력거래소의 전력 도매가격(SMP)이 ㎿h당 5만∼10만원인 점에 비춰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프랑스와 독일, 벨기에 등지에서도 ㎿h당 150∼160유로(약 21∼22만원) 안팎의 도매가가 형성돼 있다. 모두 한 달도 안 돼 수십% 상승한 결과다. 통상 봄·가을은 냉·난방을 많이 하지 않아 전력 수요가 적다. 그런데도 전력 가격이 폭등했다는 건 날씨가 추워지면 전기요금은 더 강한 인상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로베르토 칭골라니 이탈리아 생태전환부 장관은 “3분기 전기요금이 40% 인상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산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 비료 제조사인 CF인더스트리는 폭등하는 연료가격을 이기지 못하고 영국에 있는 비료 공장 두 곳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영국 철강협회도 “전력 피크시간대는 이미 수익을 내기 어려워졌다”며 정부의 즉각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일반 가구가 내는 전기요금도 올라갔다. 영국의 전력가스시장규제청(Ofgem)은 전기요금 인상률 상한을 12%로 올렸는데, 이번 겨울에는 상한선이 더 올라갈 전망이다. 그 결과 영국 1100만 가구의 연간 전기요금은 999파운드에서 1138파운드로, ‘선불계량기‘를 사용하는 400만 가구의 평균 전기요금은 1156파운드에서 1309파운드로 오를 것으로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예측했다. 스페인 가정은 1년 전 이맘 때보다 40% 더 비싼 전기요금을 내고 있다.

 

2. 왜 올랐나?: 원인은 천연가스? 재생에너지?

 

유럽 전기요금이 급등한 데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꼽힌다. 바로 천연가스와 풍력발전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유럽연합(EU)에서 가스는 원전(26%, 2019년 기준) 다음 가는 에너지원이다. 가스는 재생에너지로 가는 길목에 놓인 ‘징검다리’ 에너지원으로 불리는데, EU에서는 전체 전력의 23%를 가스로 만든다. 가스 가격 인상이 곧바로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유럽 가스 가격을 대표하는 네덜란드 TTF의 가스 가격은 올 들어 250% 올랐다. 지난 15일 10월 인도분 가스 가격은 79유로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느 재화와 마찬가지로 가스 가격이 오르는 건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럽은 지난 4월 이례적으로 추운 ‘겨울 같은 봄’을 보냈다. 이 때문에 가스 수요가 늘었다. 더구나 지난해 꽁꽁 얼어붙었던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가스 비축량은 빠르게 감소했다. 그런데 가스 공급은 원활하지 않았다.

 

유럽은 가스의 60%를 러시아에서 수입하는데, 수입량이 줄었다. 러시아는 아시아 수출 물량 증가 등을 이유로 대지만, 유럽 언론에서는 러시아가 ‘고의로’ 유럽 물량을 줄였다고 의심한다. 연말쯤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 스트림2’(NS2)를 통한 가스 공급이 시작되는데 파이낸셜타임스는 “NS2 공급 시작 전에 유럽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의도적을 공급량을 줄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대서양 동북부 연해인 북해의 풍속이 20년 만에 가장 느려진 것도 전기요금 급등의 원인이 됐다. 풍력 발전기 날개 속도가 떨어지자 전력 생산이 줄었고 전력난이 가중됐다. 특히 섬나라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해상풍력 단지를 보유하고 있고, 풍력이 전력생산의 24%(지난해 기준)를 담당하는 영국의 피해가 컸다. 영국의 전기요금 인상률이 유독 높은 건 이 때문이다.

예전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석탄 발전량을 늘렸겠지만, 기후위기 시대에는 이마저 여의치 않다. ‘탈석탄 시대에 다시 석탄을 소환할 수 없다’는 당위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는 석탄이 ‘싼 연료’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탄소는 올 초만해도 t당 30유로선에서 거래됐지만 지난달 30일 사상 처음 60유로를 넘겼고, 지난 16일에도 59.31달러를 기록했다. 영국에서 이번에 석탄 발전을 일부 가동하기는 했지만 제한적이었다.

 

3. 유럽 현지에서는 전기료 인상을 어떻게 볼까?: “그럼에도 재생에너지 후퇴는 없다”

 

지금까지 내용을 요약하면, 바람이 갑자기 줄면서 풍력발전이 줄었고, 에너지 전환의 ‘징검다리’격인 천연가스 공급은 병목현상을 보이며 전기요금이 급등했다. 석탄 발전마저 탄소 가격이 오른 탓에 부담스런 선택지가 됐다.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회의감이 들 법한 대목이다.

 

그러나 프란스 티머만스 EU 그린딜 담당 수석부집행위원장은 “이번 사태가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는 방아쇠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 14일 유럽의회에서 “에너지 가격 인상 요인 가운데 탄소 가격 상승이 미치는 영향은 5분의 1에 불과하다”며 “나머지는 공급 부족의 결과”라고 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전환이 더 빨리 시작됐더라면 지금쯤 화석연료와 가스 의존도가 더 낮았을 것이고, 그럼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격 변동의 주 원인을 천연가스로 돌리며 재생에너지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프란스 티머만스 EU 그린딜 담당 수석부집행위원장

S&P 글래벌 플래치의 유럽 전력 애널리스트인 글렌 릭슨도 CNBC 인터뷰에서 “현재까지는 전력 가격 인상의 가장 큰 요인은 가스”라고 전했다.

 

독일은 오는 26일 총선을 치른다. ‘포스트 메르켈’이 결정되는 선거인지라 나라 안팎으로 관심이 많다. 그런데 급등한 전기요금은 선거의 주요 이슈가 아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독일의 에너지 정책 싱크탱크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의 염광희 선임연구원은 “전기요금 자체는 선거 이슈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라며 “전기요금 자체 보다는 기후보호 정책이 핵심 아젠다”라고 했다. 기후중립 시점을 언제로 할지,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은 어떻게 할지, 얼마를 투자할 지 등 보다 ‘큰 그림’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4.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전기요금 인상은 ‘사회악’일까

 

물론, 많은 나라에서 재생에너지를 지원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온 것은 사실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한자릿수에 머물고 있는 한국도 앞으로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일부로 지금보다 더 비싼 전기요금을 내야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인상된 전기요금을 곧바로 ‘전기요금 폭탄’으로 등치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국은 OECD국가 중 전기요금이 가장 싼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2019년 한국의 전기요금은 ㎿h당 102달러로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낮았다. 이에 비해 독일과 덴마크 가정에서는 300달러 넘는 전기요금을 낸다. 요금에 붙는 세금이 많아서다. 이들 나라에서는 이렇게 걷힌 세금을 재생에너지 확대에 쓴다. 독일은 2000년부터 재생에너지법(EEG)을 통해 전기요금에 부담금을 거둬왔다. 올해 기준 EEG 부담금은 ㎾h당 6.5유로센트(약 90.5원)에 이른다.  

 

한국에서도 올해부터 ㎾h당 5.3원의 기후환경요금을 붙이기 시작했다. 300㎾h를 쓰는 가구라면 1590원을 기후환경요금으로 내는 셈이다.

 

장다울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정책전문위원은 “이 정도의 요금은 야심찬 기후 정책을 추진하기에는 너무 적다”며 “향후 기후위기로 예상되는 GDP의 손실액을 감안하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EG 부담금으로 비싼 전기를 써야했던 독일에서는 부담금 폐지가 논의되고 있다. 20년간 정책 효과를 충분히 봤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는 인식에서다.

 

염 선임연구원은 “독일이 유럽에서 두 번째로 비싼 전기요금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을 독일 국민들도 잘 알고 있다”며 “그러나 EEG 부담금을 20년간 유지해오는 동안 빠른 속도로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낮아졌다. 이제는 재생에너지가 도매시장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이 ‘낮은 전기요금’에 매달려온 사이 유럽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을 다 함께 부담하고, 그 결과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를 낮춰 ‘그 다음’을 논의하는 수준이 이른 것이다.

 

유럽에서는 전기요금 자체보다 에너지 취약계층을 지원하자는 목소리가 더 큰 편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이미 큰 어려움을 겪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시민단체와 언론을 통해 나온다. 영국의 경우 코로나19 이전 잉글랜드 인구의 13%, 스코틀랜드 인구의 25%가 에너지 빈곤을 겪는 것으로 전해진다. 영국 에너지시민단체인 ‘국가 에너지 행동’의 피터 스미스 이사는 AP통신 인터뷰에서 “영국 전역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미 한계점에 도달해 집에 난방을 할 수 없을 정도”라며 “정부는 이번 겨울 영국 전역에서 벌어질 에너지 빈곤층 문제를 서둘러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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