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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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전기요금 딜레마

공공요금인 전기·가스요금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정부가 물가 관리를 위해 가장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카드’다. 전기요금은 올해부터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전력생산에 쓰이는 석탄과 국제유가, LNG 등 연료비 변동분을 3개월마다 주기적으로 요금에 반영한다. 6∼8월 두바이유 평균가격은 배럴당 71달러 수준으로 3분기 연료비 기준이었던 평균 64달러보다 10.7% 올랐다. 지난해의 2배 수준이다. 전력생산에서 비중이 큰 유연탄 가격은 지난해 t당 평균 50달러대였으나 올해 2분기 100달러를 넘어섰고 9월 현재 130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연료비 조정요금 운영지침에 있는 유보조항을 근거로 두 분기 연속 요금을 동결했다. 제도 자체를 정부 스스로 무력화시킨 셈이다. 내년 3월 대선을 의식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의구심이 나온다. 죽어나는 건 한국전력과 발전 자회사들이다. 한전은 2분기 7600억원의 적자를 냈다. 2019년 4분기 이후 여섯 분기 만이다. 한전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한전의 순손실 예상액은 3조2600억원. 한국수력원자력·남동발전 등 6개 자회사까지 합치면 4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한전 지분 15% 이상을 가진 외국인 주주 등이 배임 혐의로 소송을 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ISD(투자자·국가 분쟁해결소송)까지 우려할 정도다.

그렇다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서민물가 안정’을 외치는 판국에서 선뜻 올리기도 부담스럽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장기화로 서민들의 주머니가 홀쭉해진 상황에서 5개월 연속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2%대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저렴한 에너지원을 외면하고 탈원전 정책을 고집한 정부의 딜레마다.

정부와 한국전력이 오늘 4분기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발표한다. 전기료가 오르면 2013년 11월 이후 약 8년 만이다. 업계에선 발전 연료비 상승과 한전 적자 등을 고려하면 인상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지만, 물가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하반기 물가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전의 ‘경영 정상화’냐 ‘물가 안정’이냐를 놓고 정부 고민이 깊다.


김기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