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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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北 비핵화 진전 없는데 ‘남·북·미·중 종전선언’ 제안한 文

“한반도 화해·협력의 새 출발점”
北 미사일 도발은 언급도 안 해
대화 유도할 ‘창의적 해법’ 필요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되었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를 여는 문”이라며 종전선언의 얼개를 설명했다면, 이번에는 선언 주체를 6·25전쟁 당사국들인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임기가 불과 7개월 남았고, 북한 도발이 잇따르는 등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를 고려하면 너무 한가한 제안이다. 그러기에 국제사회에서조차 ‘의외의 제안’이란 반응이 나오지 않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단절된 북·미 대화는 물론 남북 대화마저 꽉 막힌 상황에서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보려는 문 대통령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번 유엔총회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진지한 외교를 추구한다”며 동맹 차원에서 한·미 간 보조를 맞춘 모양새를 취했지만 북·미, 남북 대화조차 열리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6·25전쟁 당사국들이 한데 모여 종전선언을 논의한다는 자체가 공허한 얘기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은 북한에 잘못된 신호만 주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비핵화 논의조차 없는데 종전선언을 하면 북한의 핵 위협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반도는 평화롭다고 주장하는 셈이 된다. 이럴 경우 무엇보다 북한에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명분만 주게 될 것이다. “평화가 깃든 한반도에 왜 주한미군이 주둔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할 건가.

문 대통령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조바심이 클 것이다. 북한의 최근 잇따른 도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북한은 지난 11일, 12일 장거리 순항미사일에 이어 15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엊그제 IAEA총회에서 “북한에서 플루토늄 분리와 우라늄 농축, 다른 활동들에 대한 작업이 전속력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우려했다.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한반도에서 평화가 이뤄지는 전제 조건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뿐이고, 그 토대 위에서 ‘창의적인 해법’을 도출해내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뉴욕 연설’에서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는 건 유감이다. 평화는 하루아침에 찾아오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