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아파트 층간소음은 누구나 감안하고 살고 있지만, 이웃에서 직접 사고를 접하고 보니 너무 무섭고 소름이 끼치네요.”
27일 층간소음 문제로 살인 사건이 발생한 전남 여수시 덕충동의 한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밤 놀란 마음을 쓸어내렸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이곳에 거주하는 A(34)씨는 위층 주민과 층간소음 갈등을 빚다가 이날 0시33분쯤 흉기를 휘둘러 40대 부부를 숨지게 하고 부부의 60대 부모 2명을 다치게 한 혐의(살인·살인미수)를 받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10대 자녀 2명은 작은 방으로 피신해 화를 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범행 이후 자택으로 돌아가 “사람을 죽였다”고 자수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위층 일가족과 평소에 층간소음 문제로 다투던 중 홧김에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범죄는 매년 도돌이표처럼 반복되고 있다. 이달 16일 인천의 한 빌라에서는 50대 남성이 층간소음에 항의하는 아랫집 주민에 흉기를 던져 다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달 14일 경기 의정부시 한 아파트에서는 40대 남성이 삼단봉을 들고 윗집에 찾아가 층간소음을 항의하다 경찰이 출동했고, 경남 통영시에서는 지난달 18일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과 갈등을 빚던 한 주민이 손도끼를 휘두르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환경공단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층간소음 상담 건수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전화 상담 신청은 4만2250건으로 전년(2만6257건)보다 60.9% 증가했다. 올해 8월 기준 층간소음 관련 상담 신청은 3만2077건에 달해 지난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화 중재가 증가하고 있지만 주민 간 조정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5년간(2016∼2020년) 전화 상담이 이뤄진 14만6521건 중 4만5308건은 현장소음 진단을 신청했고 이 중 1654건은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주민이 직접 소음측정에 나서기도 했다. 여수 A씨도 이달 17일 관계 기관에 층간소음 문제를 한 차례 신고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층간소음 분쟁을 법·제도의 테두리에서 해결하기란 더욱 힘들다. 층간소음은 공동주택관리법 또는 소음·진동관리법에 따른 규제 대상이지만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발소리 등 직접 충격 소음으로 인정되려면 주간에 1분 동안 평균 43데시벨(dB)을 넘거나, 57dB 이상의 소음이 1시간 이내에 3회 이상 발생해야 한다.
환경부의 ‘층간소음 상담매뉴얼 및 민원사례집’에 나온 아이 뛰는 소리는 40dB 수준으로 층간소음 인정을 받기 어려운 수준이다. 실제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센터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연도별 층간소음 기준을 초과했다고 인정된 사례는 1654건 중 122건(7.4%)에 불과했다. 현행법상 층간소음 처벌 근거도 경범죄처벌법상 인근소란죄로 10만원 이하 벌금에 그쳐 솜방망이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마저도 ‘고의성’이 명확하지 않으면 처벌이 어렵다.
전문가는 아파트 구성원들로부터 층간소음 조정 권한을 위임받을 수 있는 중재기구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백원기 인천대 교수(법학)는 “공동주택 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민원을 접수하고 원인을 규명하는 자체적 ‘조정기구’가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이 조정기구는 민원이 들어왔을 때 적극적으로 갈등에 개입해 귀책할 만한 책임이 파악되면 다수가 동의하는 처벌 수위(벌금 등)를 결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늦은 시각에 어린 자녀들의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층간소음에는 용인하는 정도를 높게 책정하고 부부싸움, 주취자 등 상식 이외의 상황이 확인된다면 공론화를 통해 제재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