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의 대전 이전(1단계)이 내년 2월부터 시작된다. 그런데도 국가균형발전위원회(균발위)는 4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지금까지 기관이전 계획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전산설비 이전 가능성과 직원 이주 계획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없는 탓이다.
이런 졸속 행정의 배경에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세종 이전에 따른 여권의 충청지역 여론 ‘눈치보기’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기상청 이전이 급작스럽게 추진되면서 비효율성과 예산 낭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상청의 대전행은 지난해 말 중기부의 대전에서 세종으로의 이전이 추진되면서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지역사회에서 ‘대전 패싱론’이 불거지자 정치권이 서둘러 대체 기관 유치에 나섰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는 올 1월 중기부가 ‘청’에서 ‘부’로 승격함에 따라 행정 효율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관보에 이전 사실을 고시했다. 이 과정에서 대전지역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세졌다. 대전시민 80%는 중기부 세종 이전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이에 지난해 12월22일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대전청사에 기상청 등 수도권의 청 단위 기관이 이전하는 것도 대안”이라며 처음으로 기상청 이전 검토 지시를 내렸다. 여기에 허태정 대전시장도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면담하는 등 대체 기관 유치에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이후 지난 2월 국무회의에서 기상청 대전 이전이 공식화됐고, 이달 균발위 심의를 통해 기상청 이전 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이 과정을 놓고 여권이 여론을 의식해 짜여진 각본대로 이전을 밀어붙였다는 의혹도 나온다. 기상청과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박광석 기상청장은 정세균 전 총리의 이전 검토 지시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21일 직원 대상 월례조회에서 “기상청 대전 이전 자체는 공식화되겠지만 시기나 절차 등은 구체화되지 않았다”며 “동요 없이 업무에 충실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같은 정황을 감안하면 기상청 이전은 첨단장비 이전 여부와 이에 따른 비용 등에 대한 충분한 검증을 거치고 투명한 절차를 밟아 진행됐다고 보기 어렵다. 박 청장은 현 정부 대통령비서실 선임행정관 등을 역임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실이 5일 기상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현 청사 옆 별동을 증축한다던 계획은 기상청 이전 추진 속에서 국가기상센터(NMC) 신축사업으로 둔갑했다. 이에 대전청사 내 분리 입주에 따른 영향 등으로 200억원 규모이던 NMC 예산은 826억원으로 불어났다. 내년 2월 1차 이전 뒤 현업 관련 부서가 2026년 2차 이전할 때까지 본청 직원들은 5년 가까이 둘로 나뉘어 근무해야 한다.
현 청사와 오창슈퍼컴센터에 마련돼 있는 기상청 시설은 최악의 경우 네 곳으로 분산될 수 있다. 설비 이전 과정에 차질이 생길 경우 전산센터는 현 청사에 남은 채, 업무공간이 각각 정부대전청사와 NMC, 오창슈퍼컴센터로 흩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오재호 부경대 명예교수(환경대기과학)는 “미국에서 시스템을 두 개로 만들어놓고 충분히 가동되면 다른 한쪽을 없앤 적은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예를 본 적이 없다. (전산센터 이전 과정에서) 기능마비가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쪽(정치권) 만족을 위해서 대전시와 정부가 한 협의 때문에 (이전한다는 사실 자체가) 넌센스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