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해 수천억원대 배임 혐의로 구속수감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2003년 말 부동산 개발업체를 설립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유 전 본부장이 리모델링 조합장을 지냈던 것은 익히 알려졌지만, 부동산 개발업체를 차린 사실이 드러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유 전 본부장이 부동산 회사를 설립한 시점이 2004년 대장동 개발계획이 공개되기 불과 4개월 전이란 점에서 그가 대장동 사업에 진작부터 눈독을 들인 정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6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유 전 본부장은 2003년 12월 자본금 5000만원으로 ‘유앤코컨설팅’을 설립했다. 이 업체는 법인등기에서 부동산 임대업, 부동산 개발 및 컨설팅업, 유통업, 도소매업 등을 사업목적으로 명시했다. 유 전 본부장이 부동산 개발업체를 설립한 적이 있다는 사실은 공개되지 않았다. 2008년 경기 분당의 한 아파트단지 리모델링 추진위원회 조합장에 입후보할 때는 물론 2010년 성남시시설관리공단(현재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으로 선임될 때에도 유 전 본부장은 이력서에 해당 사실을 기재하지 않았다. 당시 시의회가 유 전 본부장의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질타했음에도 부동산 개발업체 설립 경력을 숨긴 것은 의구심이 가는 대목이다.
성남시가 2004년 4월 처음으로 대장동 개발사업이 포함된 ‘2020 도시기본계획’을 공개했던 점을 고려하면 유 전 본부장이 이를 염두에 두고 사전에 부동산 개발업체를 설립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유 전 본부장은 공교롭게도 도시기본계획이 공개된 다음 날인 2004년 4월13일 유앤코컨설팅 대표이사직을 사임하고 다시 감사직에 취임하는 비정상적인 행보도 보였다. 2006년 6월 유 전 본부장이 회사를 떠난 뒤 해당 법인은 대부업체로 운영되다가 2019년 폐업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부동산학회장을 맡고 있는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정부의 지휘 통제를 피하기 위해 부동산 개발업이 아닌 일반 법인으로 등록한 뒤 정관에 다양한 사업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설립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유 전 본부장이 자신이 주도세력이 되는 것보다 뒤에서 컨트롤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대표직에서 물러났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앤코’라는 사명으로 미뤄볼 때 서류상에 나타나지 않은 공동 창업자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 전 본부장이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또 다른 부동산 개발업체 ‘유원홀딩스’ 역시 그의 이름을 따서 사명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원홀딩스는 유 전 본부장이 화천대유자산관리로부터 배당받은 이익금을 세탁하는 용도로 활용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유 전 본부장이 공사에 들어오기 전 다른 경력들에도 물음표가 따라붙고 있다. 대부분의 경력이 허위이거나 과장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유 전 본부장은 성남시 측에 제출한 이력서에 1999년 10월부터 2003년 8월까지 IT업체인 N사에 재직했다고 기재했으나 N사는 2000년 6월 설립됐다. 유 전 본부장은 취임 후 2주가량 지나서 뒤늦게 N사에서 ‘근무사실확인서’를 발급받아 성남시 측에 제출했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A건축설계 사무소에서 3년간 근무했다는 경력도 허위 의혹이 제기됐다. 2개월 가까이 운전기사로 근무한 것을 부풀렸다는 것이다. 유 전 본부장은 2010년 10월 성남시의회에 출석해 “(A건축설계 사무소에 근무한 기간이) 만 3년 정도 된다”고 답변했다. 2008년 아파트 리모델링 주택조합장 신분으로 이뤄진 부동산 정보 사이트와의 인터뷰에서도 유 전 본부장은 “본업은 따로 있다. 건축설계회사에서 근무한다”며 관련 경력을 내세웠다. A사무소 대표 김모씨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불명확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유 전 본부장이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경기관광공사 사장을 거치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더불어민주당 대권 경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의 친분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유 전 본부장은 2008년 무렵 이 지사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이 지사가 성남시장 후보로 출마하자 지지 선언을 했고, 당선 뒤에는 인수위원회 도시건설분과 간사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