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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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안 먹을것” vs “규제 과도”… ‘개 식용 금지’ 현실화 가능할까 [심층기획]

1988년 서울올림픽 앞두고 문제 제기
文대통령 “금지 검토” 언급 뒤 또 논란
3대 개시장 중 대구 칠성시장만 남아
도살장 없애고 건강원·보신탕집 유지

“개고기 소비는 개인의 결정” 의견도
법 규제보다는 자연 소멸 맡겨야 해석
업계 “직업 선택 침해”… 지원책 필요
법안 상임위 계류 중… 국회 통과 주목
지난 5일 서울 마포구의 한 건물에 ‘개 잡는 선진국, 대한민국’이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동물권단체인 동물해방물결은 이날 빌딩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개 식용 금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동물해방물결 제공

“박지성, 네가 어디에 있든 너희 나라에선 개를 먹지.”

2005년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팬들이 당시 맨유에 입단한 박지성 선수를 응원하며 부른 일명 ‘개고기송’의 가사다. 뒤에 오는 가사는 “네가 리버풀 애들이라면 더 심해질 수도 있어. 걔들은 임대주택에서 쥐를 잡아먹거든”으로, 맨유의 라이벌팀인 리버풀을 조롱하는 내용이다. 한때 한국을 비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지만, 맥락상 한국보다는 리버풀을 조롱하기 위한 노래인 만큼 문제가 없다는 목소리도 컸다. 해당 응원가는 오랜 기간 박 전 선수를 상징하는 노래로 쓰이며 박 전 선수가 맨유를 떠난 뒤에도 종종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시간이 흘렀고 세상이 변했다. 한국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최근 박 전 선수가 개고기송에 대해 밝힌 입장이다. 그는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는다는 건 하나의 고정관념이자 인종적 모욕이 될 수도 있다”며 맨유 팬들에게 응원가를 멈춰 달라고 요청했다.

개고기송과 한국의 개 식용문화는 정말 사라질 수 있을까. 오랜 논쟁거리였던 ‘개 식용 금지’ 현실화 가능성에 최근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김부겸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이제는 개 식용 금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언급을 한 후로 관련 논의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상황이다.

◆84% “개고기 안 먹을 것”…개 식용 반대 여론 높아

개 식용에 대한 문제 제기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시작돼 30여년간 이어져 왔다. 과거에는 보신탕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등 거부감이 크지 않은 분위기였지만 최근에는 반대여론에 크게 힘이 실리는 추세다. 11일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5월 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개 식용 관련 인식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4%가 ‘앞으로 개고기를 먹을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또 64%가 개 식용 금지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찬성했다. 경기도는 개 농장과 도축시설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보신탕 업체도 대폭 줄었다. 국내 ‘3대 개시장’으로 불렸던 경기 성남 모란시장, 부산 구포시장, 대구 칠성시장 중 현재 개시장을 유지하는 곳은 칠성시장뿐이다. 칠성시장 역시 도살장은 모두 없어지고, 건강원과 보신탕집만 남았다. 보신탕집들은 삼계탕 등 다른 음식을 함께 팔며 개고기 비중은 줄이는 추세다. 지난 3월에는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에 개고기 판매 식당이 입점했다가 논란이 돼 배달 앱에서 보신탕 판매가 금지되기도 했다. 보신탕에 대한 젊은층의 인식을 보여주는 사례다. 직장인 정모(43)씨는 “15년 전쯤만 해도 직장 상사들이 보신탕집에 데려가곤 했는데 요즘은 상상도 못하는 분위기”라며 “복날에도 주변에서 보신탕을 먹었다는 사람은 못 봤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문 대통령이 ‘개 식용 금지 검토’를 언급하자 동물보호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표했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연간 100만 마리 개들이 도살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개 식용 종식은 시민단체나 시민 개인의 노력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문제”라며 “개 식용 종식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 제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개고기 소비는 개인 선택”…법 규제 지나치단 의견도

선호도와 별개로 법으로 개 식용 금지를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도 많다. 지난 6월 여론조사 전문회사 리얼미터가 성인 1012명을 상대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 72.1%는 개고기 섭취를 ‘개인 결정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법으로 규제하기보다는 자연 소멸에 맡겨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법제화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관련 업종 종사자의 생존권과 소비자의 선택권을 주요 근거로 내세운다. 주영봉 대한육견협회 사무총장은 “우리나라 인구 중 1000만명 정도가 개고기를 먹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법으로 막는 건 이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보신탕 업체 등의 직업 선택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반발했다.

반려견과 식용견을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응답자 절반가량인 50.7%는 개 식용과 반려목적을 구분·분리하는 법 발의에 동의한다고 했다. 다만 이런 주장은 같은 종(種)인 개를 반려용과 식용으로 구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잔인한 도살·사육 환경 등 동물 학대를 막을 수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번번이 국회 문턱 못 넘은 ‘개 식용 금지’ 현실화될까

현재 국회에는 개 식용 금지법이 발의돼 있어 이번에는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지난해 12월30일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대표발의한 ‘동물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개나 고양이를 도살·처리해 식용으로 사용하거나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개 식용 관련 업자가 폐업하거나 업종 전환을 할 경우 지원책을 마련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 의원은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는 4명 중 1명으로,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도 크게 향상돼 사회적으로 개 식용 금지 요구가 매우 높은 상황”이라며 “전세계적으로도 개는 반려동물이란 인식이 보편화돼 있고, 최근 중국·대만 등에서도 개 식용 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해당 법안은 지난 2월 상임위인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상정된 후 계류 중이다. 국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개·고양이 식용 금지는 생산자와 동물보호단체 등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라며 “충분한 사전적 논의를 통해 추진될 필요가 있다”는 유보적인 의견을 냈다.

앞서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이상돈·표창원 당시 의원이 개 식용 금지를 사실상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中도 가축 아닌 반려동물 분류… 식용금지 세계적 추세

 

미국·영국 등 대부분 개 식용 문화 자체가 없는 서구권 국가들과 달리 한국을 포함한 중국·대만·베트남 등 주로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개 식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인구가 늘어나고,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개 식용 금지’는 세계적 추세가 되고 있다.

 

11일 국회입법조사처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유사한 개 식용 문화가 있었던 대만은 2017년 동물보호법을 개정해 개와 고양이의 식용을 금지했다.

 

개와 고양이 고기를 판매·구매·식용·보유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과 벌금을 물게 된다. 또 해당 법을 위반한 사람은 위반 사실·이름·사진이 공개될 수 있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도 금지된다.

 

필리핀은 소·돼지·염소·양·가금류·토끼·물소·말·사슴·악어 외의 동물을 죽이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6개월 이상 2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에 처한다. 싱가포르와 홍콩 역시 개 식용을 법으로 금지하고, 어길 경우 처벌하는 국가다.

 

우리나라와 함께 개 식용 문화가 남아 있는 국가인 중국도 최근 개 식용 금지 법제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중국 정부는 개를 ‘가축’이 아닌 ‘반려동물’로 분류하면서 “개는 이미 전통가축에서 반려동물로 변했고, 국제사회에서도 보편적으로 가축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가축 관리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후 광둥성 선전시와 주하이시는 지난해 5월 개 식용을 금지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또 개고기 소비가 많은 국가 중 하나인 베트남은 2019년 정부 차원에서 개 식용 자제를 권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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