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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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찮은 세계식량가격… 10년 만에 애그플레이션 덮치나 [농어촌이 미래다 - 그린라이프]

식량가격지수 130P… 2011년 이후 최대치
코로나·기후변화 등 농작물 수급에 영향
곡물·유지류·육류·유제품·설탕 모두 올라

한국도 출렁… 라면·제과 등 잇단 가격 인상
농축산물값도 9월 3.7% 상승 ‘경고등’
업계 “세계 식량재고 여유… 상황은 주시”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가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가운데 국내 밥상물가도 잡히지 않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농축수산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했다. 사진은 시민들이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모습. 연합뉴스

곡류와 유지류가 식량 가격 상승을 이끌면서 세계식량가격이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농축산물가격도 지속해서 상승하는 가운데 식량 가격이 물가상승을 유발하는 ‘애그플레이션’ 우려도 지구촌에 확산하고 있다.

14일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9월 세계식량가격지수가 2개월 연속 상승해 130포인트를 기록했다. 전월(128.5포인트) 대비 1.2% 상승한 것으로 2011년 9월(130.4포인트) 이후 가장 높다.

식량가격지수는 FAO가 24개 식량품목의 국제가격 동향을 모니터링해 5개 품목군(곡물·유지류·육류·유제품·설탕)별로 작성해 매월 발표한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12개월 동안 오름세를 보이던 식량가격지수는 6월 들어 하락해 2개월 연속 내렸다. 하지만 지난 8월부터 다시 상승세로 전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기후변화 여파가 농작물 수급에 영향을 미치면서 모든 품목군의 가격지수가 지난해와 비교해 크게 뛴 상태다.

지난달 곡물가격지수는 지난해 동월보다 27.3% 오른 132.5포인트를 기록했다. 전월보다는 2% 올랐다. 밀은 국제 수요가 높은 상황에서 주요 수출국 작황이 부진해 가격이 상승했다. 쌀은 교역 활동이 개선되면서, 보리는 러시아 생산 전망이 하향 조정되면서 가격이 올랐다.

유지류는 전년 동월 대비 60% 상승한 168.6포인트로 나타났다. 팜유는 국제 수요가 높은 상황에서 주요 생산국인 말레이시아의 이주노동자 감소로 생산량 감소가 우려되면서 가격이 뛰었다. 유채씨유는 장기화한 공급량 감소로 가격이 올랐다. 대두유는 바이오디젤 부문 수요가 불확실해지면서 가격이 내렸고, 해바라기씨유는 내년까지 생산량이 충분할 것으로 전망돼 가격이 하락했다.

유제품은 전년 동월 대비 15.2% 상승한 117.9포인트, 설탕은 같은 기간 53.5% 상승한 121.2포인트를 기록했다.

버터, 치즈, 탈지분유, 전지분유 등 유제품은 계절상 재고량과 생산량이 적고 수요가 높아 가격이 올랐다. 설탕은 최대 수출국 브라질의 건조한 날씨에 서리가 내려 생산량 감소가 우려됐으나 국제 수요가 둔화하고 다른 주요 수출국 생산량 전망이 양호한 상황이다.

육류가격지수는 쇠고기와 양고기가 공급 저조로 가격이 상승하면서 전년 동월 대비 26.3% 상승한 115.5포인트를 기록했다.

세계식량가격은 최근 5년 식량자급률이 46%(2019년)에 불과한 한국의 농축산물 가격에 곧바로 영향을 미친다. 라면을 튀길 때 사용하는 팜유 가격이 오르면서 오뚜기가 지난 8월 13년 만에 라면값을 올렸고, 해태제과와 롯데제과도 유지류, 전란액, 설탕 등 각종 식품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과잣값을 인상했다.

국내 농축산물 가격도 세계식량가격지수와 국내 공급 상황 영향으로 지속 상승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농축산물 가격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3.7%로 나타났다. 달걀이 43.4% 올라 올해 1월부터 9개월 연속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고 돼지고기(16.4%), 쌀(10.2%), 상추(35.3%), 수입쇠고기(10.1%), 마늘(16.4%) 등도 상승폭이 컸다.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폭은 지난 6월 10.4%, 7월 9.6%, 8월 7.8%와 비교하면 크게 축소됐지만, 세계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기후변화 현상이 계속되는 데다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정부와 농업계는 현재 상황이 곡물 가격이 폭등했던 2007∼2008년 때와는 달라 애그플레이션 위기는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국승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장은 “식량 재고가 바닥나 애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10여년 전과 달리 현재 세계 식량 재고는 충분하며 가격도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다”면서 “다만 달러 가치 상승과 물류비 상승으로 인해 국내 식량수입 가격은 연말까지 높은 수준을 지속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이어 “애그플레이션을 걱정할 상황은 아니지만, 겨울철이면 낮아져야 하는 국제 유가가 상승을 지속하고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 대체재인 바이오연료 가격도 오르기 때문에 세계식량가격을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