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의 신경절에 잠복 상태로 있던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다시 활성화되면서 발생하는 질병인 ‘대상포진’. 이 질환은 보통은 수일 사이에 피부 발진과 함께 척추를 중심으로 한쪽에만 팥알 크기의 작은 물집이 생기며 해당 부위에 극심한 통증이 동반된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60세 이상 고령층에게서 주로 발생하는데, 피부과를 찾는 환자 중 노인이면서 행동이 부자유스러워 보이면 이 질환에 걸린 경우가 많다.
그런데 대상포진에 걸린 후 적극적인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하면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등 중증 합병증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국내 연구팀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신경과 이경열 교수와 용인세브란스병원 김진권 교수 공동 연구팀은 대상포진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항바이러스제 치료 여부에 따른 심뇌혈관 질환 합병증 발생 비율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연관성이 관찰됐다고 최근 밝혔다.
연구팀은 2003∼2014년 대상포진으로 진료받은 8만4993명을 항바이러스제 치료 그룹(7만6910명)과 비치료 그룹(8083명)으로 나눴다.
대상포진은 전 인구의 20% 이상에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2∼10세 때 수두를 일으키는 바리셀라 조스터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어릴 때 수두를 앓고 나면 이 바이러스가 신경세포에 잠복하게 되는데, 신체 면역력이 떨어지면 활동을 재개해 신경 주변으로 퍼지면서 대상포진을 일으킨다.
흔히 피부발진과 극심한 통증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으나,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뇌혈관에 직접 침투하면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등의 중증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연구 결과, 대상포진 진단 후 조기에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받은 환자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심근경색 발생 위험도가 11% 낮았다. 또 뇌졸중 발생 위험도 같은 조건에서 20%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김진권 교수는 “항바이러스제가 대상포진에 따른 피부병변이나 신경통의 합병증을 효과적으로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대상포진과 연관된 심뇌혈관 질환 합병증을 감소시키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면서 “이번 연구로 효과를 확인한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경열 교수는 “대상포진이 나타났을 때 단순한 통증이나 피부질환으로만 치부하지 말고 적극적인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통해 이후 나타날 수 있는 중증 합병증을 예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임상감염병’(Clinical Infectious Diseases) 최근호에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