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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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일 정상 통화, 소통·협의로 외교 해법 찾는 계기 되길

문재인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신임 일본 총리가 15일 처음 통화를 했다. 기시다 총리가 취임한 지 11일 만에 어렵사리 성사된 통화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취임 때와 비교하면 사흘 늦어졌다. 일본 언론은 한국이 ‘2순위 그룹’으로 밀렸다고 전했다. 사실이라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두 정상은 30여분간 진행된 이번 통화에서 양국 간 최대 현안인 과거사 문제를 놓고 평행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은 강제동원 피해 배상 문제에 대해 “한일청구권협정 적용 범위에 대한 법적 해석에 차이가 있는 것이 문제”라며 외교적 해법을 찾자고 제안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피해자분들이 납득하면서도 외교관계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해결책”을 모색하자고 했다. 하지만 기시다 총리는 한국이 일본이 수용할 만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일본 정부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정상 간 대면 회담과 관련해 문 대통령이 직접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한 반면, 기시다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대면 정상회담은 현 단계에서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한·일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이견만 확인한 통화여서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양국 정상은 ‘소통과 협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외교당국 간 협의와 소통을 가속화하자”고 했고, 기시다 총리는 기자들에게 “일·한의 의사소통은 제대로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오는 31일 총선을 앞둔 기시다 정권은 한국에 대한 국내의 반감 탓에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설 형편이 아니다. 다음달 이후에야 소통의 계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핵문제와 한반도 주변 안보정세가 날로 심각해지는데 최악의 한·일관계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는 것을 양국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 이번 주 초 서울에서 한·미·일 정보수장 회동이 이뤄지고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일 북핵수석대표 협의가 열리는 것도 그만큼 정세가 긴박하다는 방증이다.

이런 상황에서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일본 군국주의 상징 야스쿠니신사의 가을철 제사인 추계예대제를 맞아 기시다 총리가 17일 취임 후 처음으로 공물을 납입했다. 전임자의 예를 따랐다지만 일본 유권자들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스가 전 총리와 일부 의원들은 직접 참배했다. 한국 등 주변국들의 과거사 상흔을 외면하는 행태부터 바꿔야 한·일관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