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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초계기 위협받았던 그 군함, 최신형으로 재탄생했다 [박수찬의 軍]

해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이 기동훈련 도중 해상사열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018년 12월 20일 동해 대화퇴어장 인근 공해상. 북한 선박 구조요청을 받고 출동한 해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과 해경 경비함 5001함에 일본 해상자위대 P-1 초계기가 저공으로 접근했다.

 

한일 관계를 수개월 동안 급속히 악화시켰던 ‘일본 초계기 저공위협비행’ 사건의 시작이었다. 

 

당시 P-1 초계기 위협에 직면했던 광개토대왕함은 일선에서 오랜 기간 활동한 함정이었다. 일본의 최신 초계기에 신속하게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로부터 약 3년이 흐른 지금, 광개토대왕함은 새로운 함정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방위사업청은 22일 광개토대왕함의 성능개량 작업을 마치고 해군에 함정을 인도했다. 전투체계와 음파탐지기를 교체해 전장 상황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 상당 기간 현역에서 활동할 전망이다.

해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이 원해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대양해군’ 상징이었지만…노후화 심해져

 

3200t급 구축함인 광개토대왕함은 한반도 연안을 벗어나 먼바다로 뻗어나가려는 한국 해군의 야심이 드러난 첫 함정이다.

 

1980년대 한국 해군 주력 함정이었던 울산급 호위함과 포항급 초계함은 북한 고속정이나 어뢰정, 반잠수정 침투 저지작전을 수행했다. 작고 민첩하며 다수의 함포를 장착한 것도 이 때문이다.

 

1998년 취역한 광개토대왕함은 달랐다. 당시 미국과 유럽 해군에서는 수직발사관(VLS), 근접방어체계(CIWS), 헬기 격납고와 갑판을 갖춘 구축함이 유행하고 있었다. 광개토대왕함은 이같은 추세를 충실하게 따랐다. 

 

광개토대왕함은 시 스패로 함대공미사일과 골키퍼 근접방어체계, 슈퍼링스 해상작전헬기를 탑재한다. 전투체계는 영국 BAE 시스템스의 SSCS MK7과 네덜란드 시그널(현 탈레스)의 사격통제체계 등을 사용했다. SSCS MK7은 당시 기준으로 최신 함정이었던 영국 해군 23형 호위함에서 쓰였던 우수한 전투체계였다.

해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이 기동훈련 도중 함포를 사격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밖에도 핵심장비 백업 및 내충격 설계와 손상통제 기술 등이 대거 적용됐다. 제한적이나마 레이더 탐지면적을 줄이는 기술도 쓰였다. 최근 건조되는 전투함에서는 필수적인 요소들이 광개토대왕함에서 처음으로 사용됐고, 이는 한국 해군이 대양해군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기술을 준비하는 계기가 됐다.

 

현대적인 성능을 갖춘 광개토대왕함은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이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해군을 대표하는 존재로서 핵심적 역할을 맡았다. 

 

1998년 진해에서 열린 정부수립 50주년 기념 국제관함식에서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탑승해 국내외 함정으로부터 경례를 받는 좌승함 역할을 맡았다. “광개토대왕함이 없었으면 선진국 해군에게 한국 해군이 초라하게 보였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시 한국 해군에서 광개토대왕함의 비중은 컸다. 

 

하지만 세월의 변화에 따른 노후화는 피할 수 없었다. 특히 정보통신 기술의 급속한 발달은 광개토대왕함은 물론 동급 함정인 을지문덕함, 양만춘함의 전투체계를 노후장비로 전락시켰다.

 

2014년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광개토대왕함 등의 전투체계가 486컴퓨터에 16MB 메모리의 장비를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전투체계가 수시로 다운돼 재시동이 빈번하기도 했다. 고화질 영상과 사진 등의 정보를 전송하거나 공유하는데 제약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2018년 12월 20일 동해 대화퇴어장 인근 공해상에서 일본 P-1 초계기에 촬영돼 일본 정부가 공개한 광개토대왕함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2018년 일본 초계기 저공비행위협은 이같은 문제를 재확인하는 사건이었다. 광개토대왕함의 영상 장비로 P-1 초계기의 비행 모습을 촬영했지만, 채증 절차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노후 장비로 찍은 영상의 화질은 공개가 어려울 정도로 화질이 낮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해경이 포착한 영상으로 당시 상황을 대외에 알리게 됐다.

 

이후 해군은 전 함정에 관련 장비를 지급하는 등 채증 능력을 대폭 강화했다. 하지만 광개토대왕함과 동형함정의 전투능력을 높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해군 수상함 최초의 성능개량 사업 대상이 광개토대왕함과 동급 함정이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2030년대까지 일선 지킬 듯

 

광개토대왕함과 동급 함정 2척의 성능개량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중이다.

 

지난해 9월 양만춘함이 성능개량을 완료했고, 지난 22일 광개토대왕함의 개량 작업이 끝났다. 을지문덕함은 내년 12월까지 해군에 인도된다.

해군 구축함 을지문덕함이 호위함들과 함께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성능개량의 핵심은 전투체계 교체다. 윤영하급 고속함을 시작으로 성능 향상이 진행됐던 국산 함정 전투체계는 인천급과 대구급 호위함 탑재 버전에서는 선진국과 유사한 수준까지 성능이 높아졌다.

 

광개토대왕함과 동급 함정의 전투체계는 이를 활용했다. 노후 체계를 국산 전투체계로 대체하면서, 기존에 장착된 네덜란드 골키퍼 근접방어체계와 이탈리아산 127㎜ 함포 등의 무장을 전자 시스템으로 통제하는 작업도 이뤄졌다. 

 

199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무장을 2010년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제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 작업이 성공하면서 전투력 유지와 해외 시장 진출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성능개량된 광개토대왕함과 동급 함정은 표적 관리능력은 3배 이상, 정보 처리 속도는 100배 이상 증가시켜 전투지휘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이는 전투능력 증대에 큰 도움이 된다. 광개토대왕함의 대공전 체계는 레이더가 포착한 표적 정보를 자동으로 분석해 위험 수준을 파악하고 교전 우선순위를 설정한 뒤 시 스패로나 골키퍼, 채프, 전파방해 등의 수단을 사용해 요격하는 방식이다.

해군 구축함 을지문덕함이 하푼 대함미사일을 해상 표적을 향해 발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정보처리속도가 느리면 교전을 벌일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 반대로 초고속 정보처리가 이뤄지면 교전에 필요한 시간적 여유가 늘어난다. 함정의 생존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잠수함 대응능력 향상을 위해 최신 선 배열 예인 소나(TASS)로 교체, 수중 표적 탐지 및 추적 성능도 높아졌다.

 

다만 광개토대왕함의 무장 교체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시 스패로를 사용하는 광개토대왕함의 대공미사일을 교체하려면 미국산 ESSM을 도입해야 하는데, 규모의 경제를 고려하면 적절치 않다. 

 

국산 해궁 함대공미사일은 미국산 마크48 수직발사관과의 체계통합 문제가 있다.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처럼 국산 발사관을 설치하는 방법이 있지만, 비용 부담이 적지 않다.

 

울산급 배치4 건조 사업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상황에서 노후 함정 성능개량에 과도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현재 광개토대왕함과 동급 함정들은 성능개량 직후에도 당분간 일선을 지킬 예정이지만, 울산급 배치4가 전력화되면 일선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10여년 동안은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계속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