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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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나비의 착각

한경용

고무풍선이 되다 기다리던 출근과 팔짱 끼는 날

베란다의 나비 빨래한 와이셔츠에 넥타이가 되고

바이올렛 빛 꿈을 꾸었다

밤의 진실을 배우다 정규직으로 가는 코스

행간마다 주변을 맴돌았다.

백지장 한 장에 불과한 경계 강 건너만큼 아득하였다

먼저와 반기는 솔나무가 단풍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었다

기다리는 벽 앞에서 포장한 뜨거운 얼음

아침 이슬로 사라지다.

스산한 파도가 노니는 연구실과 작별하는 오후

낡은 증명사진을 담은 가방이 떠가는 폐선장

겁먹은 이력이 공중으로 솟구친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면 어디든 날 수 있는 나비처럼 취업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습니다.

 

그런데 그 희망은 시간이 흐를수록 고무풍선이 됩니다,

 

고무풍선이 빵 터지기 직전,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합니다.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는 백지장 한 장에 불과하지만, 강 건너만큼 아득합니다.

 

사철 푸른 소나무인 정규직은 비정규직인 나에게

 

언제든 떨어뜨릴 수 있는 단풍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줍니다.

 

나는 뜨거운 열정을 갖고 일하지만, 그 열정은 늘 벽에 막혀 금방 사라져버리는

 

아침이슬처럼, 떨어지는 단풍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보랏빛 꿈을 꾸던 나는 어느새 낡은 폐선이 되어 버립니다.

 

나의 인생은 나비의 착각이었습니다.


박미산 시인, 그림=림지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