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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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창칼럼] 휘청거리는 공수처

손준성 구속영장 기각 망신살
인권수사 강조하곤 절차 무시
수사능력 부족 우려가 현실로
한눈 팔지 말고 정도 걸어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 전후로 공수처의 수사 능력에 대한 우려가 일었다.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이 수사 경험이 없는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인데 실무를 지휘하는 공수처 차장마저 판사 출신을 기용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특수수사통 검사들이 청와대의 인선 과정에서 배제된 것으로 드러나 뒷말이 무성했다. ‘종이호랑이에 그칠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자 김 처장은 신규 임용한 공수처 검사 13명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최후의 만찬’에 비유했다. “(예수의 제자) 13명 가운데는 무학에 가까운 갈릴리 출신 어부가 많은데, 세상을 바꾸지 않았느냐”며 “13명이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다. 냉엄한 수사현실을 모르고 의욕만 앞세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처장은 지난 1월 취임사에서 “적법 절차와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해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 수사를 원칙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품격 있고 절제된 수사를 강조한 것이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공수처가 ‘고발사주’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해 청구한 영장이 잇따라 기각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공수처 출범 이후 1호 체포영장·구속영장이었기에 망신살이 뻗쳤고 수사 차질도 불가피하다. 혐의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고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도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손 검사가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조사도 없이 영장을 청구한 건 무리수였다. 공수처로선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뼈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수사 과정에서 절차적 정의를 간과한 점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피의자가 소환에 불응하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조사를 마친 뒤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게 통상의 수사절차다. 체포영장이 기각됐을 때는 보강조사를 거쳐 재청구하는 게 수순이지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경우는 없다. 도대체 뭐에 쫓긴 건지 의문이다. 대한변협도 “수사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거듭 청구해 국민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반인권적 수사관행을 타파하겠다는 목표로 태동한 기관이 할 일이 아니다.

한 달 이상 진행된 수사는 함량미달이다. 공수처는 손 검사의 구속영장에 “성명불상의 상급 검찰 간부들이 불상의 장소에서 성명불상의 검찰 공무원에게 고발장 작성 등을 지시하고, 김웅과 성명불상의 야당 인사와 공모했다”고 적었다. 한 문장에 ‘불상’ 단어를 네 번이나 넣었다. “이것은 영장인가 소설인가”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영장실질심사 때는 손 검사가 고발장 작성 및 전달 등을 지시했다고 의심할 만한 근거로 대검 조직도를 제시했다니 어이가 없다. 국민의힘 김웅 의원실 압수수색 때 항의를 받고 대기하다 밤늦게 철수하는 망신을 당했다. 다른 의원실 압수수색 때는 ‘빈손 철수’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정치적 중립도 의심받고 있다. 공수처는 손 검사에게 “대선후보 경선 일정 등을 고려해 조속한 출석 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대선후보 경선과 수사가 무슨 상관인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민의힘 후보를 결정하는 데 판단할 수 있도록 수사가 신속하게 종결돼야 한다”고 말한 다음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것도 송 대표가 소환조사를 재촉한 직후였다. 공수처가 집권당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공수처는 출범 과정에서 많은 의구심을 낳았다. 지난 3월 당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조사하면서 공수처장의 관용차로 에스코트한 ‘황제조사’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검찰의 대안으로 제시된 신설 수사기관이 지금처럼 헛발질을 계속하면 국민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공수처가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할 능력과 강단이 있는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벌써 개혁 대상이란 말이 나온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공수처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공수처가 살 길은 원칙을 지키는 것뿐이다. “여당 편도 야당 편도 아닌 오로지 국민 편만 드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수사와 기소여야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공수처 출범식 때 김 처장이 한 말이다. 결국 실천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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