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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때 묻은 헌책 빼곡­… 쿰쿰한 책향기 사이로 '웜홀 추억여행' [밀착취재]

독서의 계절… 공공헌책방 ‘서울책보고’ 찾는 사람들
서울책보고의 명물인 철제서가. 책벌레가 책을 파먹고 지나간 공간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최고의 포토존이다.

길게 이어진 아치 형태의 철제서가에 책들이 빼곡히 꽂혀있다. 사람들이 저마다 진지한 표정으로 책을 고른다. 서가 한쪽에는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진 이들도 보인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 서울책보고의 주말 풍경이다.

 

서울책보고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공공헌책방으로 점점 사라져 가는 헌책방을 살리고 시민들이 좀 더 쉽게 책을 접할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2019년 3월 27일 문을 열었다. 개관 당시 헌책방 25곳이 참여했는데 지금은 31곳으로 늘었고 판매하는 서적도 13만권에 달한다. 서울책보고는 입점한 헌책방들의 서적을 위탁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적 판매에 따른 수익금은 최소한의 수수료만 제하고 헌책방에 돌아간다.

각자 개성과 특색을 가진 헌책방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기 때문에 책을 구입하러 이곳을 찾는 시민들에게 편리함과 더불어 이 책 저 책 마음껏 골라보는 재미를 주고 있다.

박중인 할아버지가 전사(戰史) 관련 책을 고르고 있다.

세계 전사(戰史)와 외교, 군사 분야 서적을 구하러 서울책보고를 찾았다는 박중인(87) 할아버지는 “군에서 전쟁사를 강의하다 퇴역했는데 1, 2차 세계대전과 관련된 원서를 이곳에서 많이 발견해 자주 방문하고 있다”며 책장에서 두꺼운 영문 원서를 한 권 빼내 살펴본다.

책에 남아 있는 옛 주인의 흔적들을 발견하는 것도 헌책이 가진 매력중 하나다.
서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시민들.

만화책이 가득 찬 서가에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꽤 많이 보였다. 가족들과 함께 왔다는 한 40대 가장은 어릴 때 즐겨 보던 만화책들을 헌책 더미에서 하나 둘 찾아내는 재미가 있다며 환한 표정으로 책장을 넘겼다.

독립출판물 코너에서는 다양한 개성을 지닌 책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책벌레가 지나간 형태의 원형 서가 반대쪽에는 일반 서점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립출판물 코너와 베스트셀러들을 시대별로 분류해 놓은 기획전이 마련돼 있어 개성 넘치는 독특한 서적들을 한꺼번에 만나 볼 수 있다.

또한 온라인을 통해 북콘서트와 문학 강좌 등 다양한 주제의 비대면 프로그램도 꾸준히 열려 서울책보고가 단순히 헌책만 판매하는 곳이 아닌 복합문화공간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낡아서 방치돼 있던 창고가 헌책방 아웃렛인 서울책보고로 재탄생했다.

‘서울책보고’라는 이름은 중요하고 귀한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를 뜻하는 ‘보고(寶庫)’와 ‘책을 보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누군가의 손길이 스쳐갔고 그 감성과 추억들을 책갈피 사이사이에 품고 있는 헌책들의 보물창고에서 가을밤을 같이 할 책 한 권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