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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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요소수 품귀로 ‘유로6’ 경유차 운행 중단 위기…정부 대책은?

유로6 경유차 '올스톱' 최악의 상황 닥친다면
긴급 차량만이라도 요소수 없어도 운행 허용하는
규제 완화 고려해 볼 수도

국제적으로 약속된 유로6
정부가 스스로 깨야 하는 만큼
상당한 고민 있을 듯
요소수 품귀 현상이 발생해 물류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의왕컨테이너 물류기지의 한 주유소에 요소수 공급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의왕=뉴시스

요소수 부족 장기화로 질소산화물 환원촉매장치(SCR)를 부착한 '유로6' 경유차 운행 중단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산업용 요소수를 차량용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만약 유로6 경유차가 '올스톱'하는 최악의 상황이 닥친다면, 긴급차량만이라도 요소수 없어도 운행을 허용하는 규제 완화를 고려해볼 수 있다. 다만, 국제적으로 약속된 유로6를 정부가 스스로 깨야 하는 만큼 상당한 고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5일 뉴시스와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요소수 품귀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산업용 요소수를 차량용으로 전환하기 위한 기술적·환경적 검토를 거쳐 그 결과를 이달 셋째 주 초에 발표할 계획이다.

 

차량용 요소수는 경유차 내 SCR에서 질소산화물을 물과 질소로 바꾸는 필수 물질이다. 질소산화물은 발암물질일 뿐만 아니라 초미세먼지 원인 물질로도 작용하는 만큼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

 

국내에서는 2015년부터 유로6가 적용되면서 경유차에 SCR을 의무적으로 장착하고 있다. SCR이 장착된 경유차는 요소수가 부족하면 시동이 걸리지 않거나 속도가 급감해 사실상 운행이 불가능하다. 전체 등록된 경유차 981만5897대 중 SCR이 설치된 건 215만6249대다.

 

요소수 부족이 장기화할 경우 경유차 215만대 이상이 멈추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여기에는 구급·소방·경찰차 등 긴급차량과 청소·물류 등 사회필수차량도 포함돼 있다.

 

이에 정부는 중국 측에 신속한 검사를 요청하는 한편, 수입국 다변화를 검토 중이다. 지난 3일 국내 요소수 제조사들과 간담회를 열고 요소수 재고 파악, 매점매석 방지 등에 나섰다.

 

특히 환경부는 산업용 요소수를 차량용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산업용 요소와 요소수 시료를 확보하고, 실제 자동차에 주입해 오염물질 배출 농도를 분석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산업용 요소수를 활용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도, 장기적인 해결책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요소는 전 세계적으로 한 해에 2억t 이상 생산되는 범용 화학소재다. 특별한 화학물질은 아니다"라며 "순도와 농도를 조절해야 하지만, 산업용을 차량용으로 전환하는 데 크게 문제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적합한 순도와 농도를 맞출 수는 있겠지만, 국내 보유량 자체가 한정돼 있어 임시방편밖에 안 된다"며 "다른 국가에서 수입하려면 1~2개월이 필요한데, 그 기간을 버틸 수 있는지가 문제"라 했다.

 

산업용 요소수 전환과 함께 긴급차량, 사회필수차량에 한해서만 요소수 없이도 운행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즉, SCR이 부착되지 않은 차량은 요소수가 없어도 운행을 허용하고, SCR 장착 차량은 요소수 없이도 운행할 수 있도록 SCR 제어로직 개조를 허용하는 것이다.

 

전문가들 의견을 종합하면 일반적으로 요소수 없이 운행할 수 있도록 SCR 제어로직을 개조하는 데 120만~150만원 정도 소요된다. 그러나 제어로직 개조와 원상복구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모든 차량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정책화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제어로직 변경과 원상복구에 발생하는 비용은 누가 부담하고, 이 작업을 누가 담당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며 "SCR은 사용을 중지하면 고장이 발생하는데, 수리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도 있어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쉽게 대응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운행 대수가 적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긴급차량 등에만 한시적으로 적용이 가능할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또 긴급차량 대부분은 정부가 관리하는 만큼 제어로직 변경과 원상복구가 유리할 것이란 진단도 있다.

 

다만, 일각에선 환경 규제를 담당하는 정부가 나서서 SCR 프로그램을 개조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즉, 국제 규약인 유로6를 정부가 스스로 깨는 역설적인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소프트웨어상으로 조작해서 운행을 가능하게 할 수는 있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고민해봐야 하는 지점"이라며 "유로6는 국제적인 약속이다. 그걸 중단하면 질소산화물이 그대로 배출되는 등 문제가 커진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국제규약을 깨면서까지 긴급차량 운행을 유지해야 할지에 대한 당국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