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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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칼럼] 국운 일으켜 세울 후보들인가

李, 욕설·여배우 논란 도덕성 실추
尹, 처가 의혹·잇단 실언 비판 자초
모두 경제·안보정책 역량 의문시
국가 비전·수권 능력 보여줘야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리더십의 교과서다. 군비경쟁을 지렛대 삼아 총 한 방 안 쏘고 소련을 무너뜨려 냉전을 종식시켰다. 세금 감면, 규제 혁파, 기업 무간섭을 표방한 레이거노믹스로 초저성장·고물가로 신음하던 미국 경제를 건강 체질로 바꿔 놓았다. 그 결과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이 됐고 15년간 경제호황을 구가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국운을 레이건만큼 끌어올린 대통령은 없다. 최고지도자가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해 에너지를 결집할 때 국운이 상승곡선을 그린다는 것을 레이건은 입증했다.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레이건에 비견된다. ‘유럽의 병자’였던 독일을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유럽연합(EU)의 성장엔진이자 지도국으로 변모시켰다. 16년간 총리를 맡을 만큼 높았던 국민 지지율은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반대파 의견을 포용하며 정책을 편 ‘겸손·경청·통합의 리더십’에 기인한다.

김환기 논설실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대선 경쟁이 뜨겁다. 대선 시즌이 되면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는 게 당연한데 이번엔 다르다. 걱정이 더 큰 게 현실이다. 두 유력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은 것이 원인이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선거판’이다.

정치 리더십은 국가의 당면 현실과 시대 정신이 무엇이냐에 따라 요구되는 덕목이 달라진다. 우리 외교·안보 지형은 지금 북한 핵과 미·중 패권경쟁으로 매우 엄중한 상황이다.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1인당 GDP(국내총생산) 4만달러 시대도 속히 열어야 한다. 중차대한 난제들을 해결할 리더십이 절실하다. 새 대통령은 국가와 통치, 정당, 민주,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식견과 바른 품성·도덕성, 국익을 극대화할 외교감각, 한국을 선도국에 올려놓을 비전을 갖춰야 한다. 두 후보의 리더십과 간극이 크다.

이 후보는 여배우 스캔들 논란, 형수 욕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도덕성이 실추됐다. 윤 후보도 고발사주 의혹과 처가 관련 의혹, 전두환 옹호 실언으로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의 도덕성이 국격으로 인식되는 국제 현실에서 악재가 아닐 수 없다. 정책 역량도 미덥지 못하다. 두 후보 모두 경제 상황을 저성장의 위기로 진단하고 성장을 핵심과제로 설정한 건 바람직하다. 하지만 각론을 보면 자기 색깔이나 브랜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후보가 탈탄소, 디지털 시대 등 전환적 위기에 대응하겠다며 공약 1호로 공표한 ‘전환적 공정성장’(전환 성장+공정성장)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에너지 고속도로를 깔겠다는 ‘전환성장’은 문재인정부의 ‘그린뉴딜’과 판박이다. 소수에 집중된 자원과 기회를 공정히 배분해 성장기반을 만들겠다는 ‘공정성장’도 갑질을 근절하겠다는 문정부의 ‘공정경제’와 닮았다. 윤 후보는 “불필요한 규제를 혁파하고 역동적이고 공정한 경제시스템을 구축하겠다”면서 “AI(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업에 지원을 집중해 잠재성장률을 다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교과서적인 경제관으로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북핵 이슈는 다를까. 이 후보는 문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계승하고 개성공단 재가동, 철도·도로 연결을 위해 유엔에 포괄적·상시적 제재 면제를 설득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반발을 부르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윤 후보는 비핵화 이후 남북 공동경제발전계획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나름의 접근 방법은 내놓지 못한다.

대통령직의 무거움을 인식하고 있는지 두 후보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저서 ‘대통령학’에서 “우리 대통령 후보들은 당선에만 관심을 집중해 당선 후의 국정운영 준비를 하지 않는 경향이 높다. 따라서 쿠데타로 대통령이 됐든, 선거를 거쳐 당선됐든 대체적으로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두 후보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국운을 끌어올릴 국가 비전과 정책을 개발하기 위해 더욱 분발해야 할 것이다.


김환기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