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의원 선거와 함께 치러진 최고재판소 판사(대법관 해당) 대상 국민심사. 임명 후 첫 중의원 선거를 맞은 최고재판소 판사 11명의 신임 여부를 묻는 것이었다. 여느 때처럼 모두가 신임을 받기는 했으나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지난 6월 부부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민법 규정을 합헌으로 판단한 4명에 대한 불신임률이 다른 재판관들에 비해 높은 7% 이상으로 나왔다는 점이다.
일본은 부부가 같은 성씨를 쓰도록 법률로 강제한다. 이를 두고 결혼생활을 어렵게 하는 남녀차별적 제도이자, 사회 다양성을 해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국민들 사이에서 부부별성제 도입 요구도 크고, 정치권에서도 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하지만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해 법률 개정의 키를 쥐고 있는 자민당의 벽을 좀체로 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도 그랬듯, 부부별성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은 일본 사회에서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상의 불편 크고, 차별적인 부부동성 없애야’
일본에서 부부가 같은 성씨를 쓰도록 한 민법 규정이 생긴 것은 메이지유신 이후인 1898년이다. 이때는 아내가 남편 성씨를 따르도록 못 박았으나 1947년 부부 중 한쪽의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부부는 혼인할 때에 정한 데 따라 남편이나 아내의 성을 칭한다”(민법 750조)가 그것이다. 아내의 성씨도 결혼 후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조치지만 현재 남편 성씨를 따르는 비율이 95%를 넘는다.
1990년대 이후 남녀평등 의식이 확산되면서 선택적 부부별성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일단은 부부동성제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달 27일 보도한 연구직 30대 여성 A씨의 사례를 보자.
2년 전 결혼한 A씨는 10월 초 ‘서류상 이혼’을 마쳤다. 남편이 외국에서 일하게 되면서 자신도 현지에서 직장을 구하려다보니 하게 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 연구직은 논문 등에서의 과거 실적이 중요한데 결혼으로 남편 성씨를 따르면서 이름이 바뀌어 자신의 성과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서류상 이혼과 상관없이 실질적 부부생활을 이어가겠지만 문제는 남는다. 주택임차, 보험 계약 등에서 두 사람이 가족관계임을 증명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걱정과 불편함이 A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각종 공문서, 통장 등을 바꿔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감내해야 해 성씨를 바꿀 필요가 없는 사실혼만 유지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는 동성제가 결혼율과 출산율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을 바라는 여론은 현저히 높으며, 특히 젊은 층에서 이런 경향이 뚜렷하다. ‘변호사 닷코마뉴스’가 지난 8월 15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도입 찬성은 63.3%에 달했고, 반대는 20.8%에 불과했다. 지난해 11월 와세다대의 7000명 대상 조사에서는 찬성률이 70.6%(반대 14.4%)를 기록했다. 일각에서는 부부가 성을 따로 쓰면 가정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가족간 일체감에는 영향이 없다”는 의견이 60.4%에 달한다는 결과(2018년 내각부 조사)도 있었다.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부부동성제를 겨냥한 소송도 이어져왔다. 지난 6월 최고재판소가 부부동성제를 합헌으로 판단한 재판은 2018년이었다. 사실혼 관계이던 커플 세 쌍은 양쪽 성씨를 적어 제출한 혼인신고서가 거부되자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과 혼인의 자유에 위배된다”며 소송을 냈다. 이들은 판결 결과에 대해 “법원은 왜 개인의 권리를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는가”라고 분노했고, 언론은 “최고재판소 판사 15명 중 여성은 2명뿐”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정보기술(IT)기업 ‘사이보즈’의 아오노 요시히사 대표 등이 참여한 같은 내용의 소송은 최고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재판이 있을 때마다 여론이 움직인다”며 사법적 대응을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부별성의 최대 난관은 자민당 내 보수파
“부부별성이 현실화되지 않은 최대 원인은 자민당 내의 강력한 반대 세력이다. (이들의) 대표격이 아베 신조다.”
지난달 마이니치신문은 중의원 선거 쟁점을 정리한 기사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여기서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의 벽을 자민당 전체가 아니라 아베 전 총리로 대표되는 ‘자민당 내 반대 세력’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정부나 자민당은 선택적 부부별성제 도입에 전향적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1996년 법무상 자문기관인 법제심의회에서 민법 개정안 요강을 정리하고, 실제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자민당은 애초 공약집에 “부부의 성씨에 관한 구체적인 제도에 대해 한층 더 검토를 진전시킨다”는 내용을 넣었다. 기시다 총리나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등 주요 정치인들 중에도 본래는 도입을 찬성했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고, 공약집에서 관련 내용도 삭제됐다.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늘 지목되는 것이 ‘신중파에 대한 배려’다. 표현은 점잖지만 보수층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의미다. “부부가 성을 달리하면 가족 단위의 사회체제가 붕괴할 위험이 있다”, “다른 성을 쓰면 가족의 정이 깨진다”고 생각하는 보수층은 자민당의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기반이다.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자민당 후보로 입후보했던 한 정치인은 “이전부터 자민당 지지자들은 ‘별성 따위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며 “내가 지지를 호소했던 여성들 중에는 별성제를 찬성하는 사람도 많지만 무당파인 이들이 반드시 투표를 할 것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별성 문제 대응은 보수층과의 거리감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의 이야기가 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아사히신문, 도쿄대가 이번 중의원 선거 입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는 선택적 부부별성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내놓고 말은 못 하는 어정쩡한 태도가 드러난다. 선택적 부부별성제에 대한 찬반을 묻는 질문에 자민당 후보자들의 44%는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답해 확실하게 반대(33%), 찬성(23%) 의견을 표현한 쪽보다 많았다.
양성평등 확대 등과 맞물러 점점 세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보수파의 근심이 선택적 부부별성제에 대한 강한 거부감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보수파 논객인 후루야 쓰네하라씨는 ‘비즈니스 인사이더 재팬’과의 인터뷰에서 “아베·스가 정권에서 보수는 세력이 큰 것으로 생각됐지만 불안감도 컸다”며 “미투 운동 등으로 보수파 스스로 마이너리티(소수)가 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