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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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권력의 절제

‘한다면 한다’는 李, 독선 우려
尹 “권한 남용 않겠다”로는 부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말처럼 그가 주재한 첫 중앙선대위 회의는 낯선 느낌이었다. 이 후보는 “중간에 앉고 보니 상당히 어색하고 약간은 불편한데 빨리 적응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 양 옆으로 다선 의원들이 줄줄이 앉았다. 스스로를 ‘변방의 아웃사이더’로 표현한 이 후보가 민주당을 접수한 ‘승장’임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그제 경선 후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정치에 뛰어든 지 넉 달 된 제가 과분하게도 제1야당 후보가 됐다”며 겸손하겠다고 몸을 낮췄다.

1987년 민주체제 이후 대선에서 정치와 무관한 새 인물이 바람을 일으킨 적은 있지만 주요 정당 후보 자리에 오른 적은 없다. 한 표라도 더 얻으면 권력을 독식하는 선거 제도에서 후보 지지율은 국회 경험, 정치 이력을 압도했다. 치열한 좌우 진영 대결이 될 이번 대선에서 양당은 다선의 국무총리 출신을 제치고 이 후보를, 대통령 꿈을 준비해온 경험자 대신 윤 후보를 선택했다.

황정미 편집인

초유의 ‘0선’ 후보들은 자신들의 승리가 여의도 정치를 바꾸라는 국민 명령이라고 했다. 공감한다. 국민보다는 자신이 속한 진영, 계파 이익을 좇는 기득권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판을 뒤엎겠다는 식의 발언은 시원하긴 하지만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자신들이 그런 정치를 하지 않으면 된다. 기존 정치 세력을 싸잡아 비난하면서 나는 다르다고 강변하는 건 쉽다. 반(反)정치의 정치다. 거기에 기대 바람처럼 끝난 이들이 많다.

민주당 역사를 오래 함께 한 정치인들은 이재명의 승리에 당혹해했다. 여배우 스캔들이나 형수 욕설 같은 도덕성 논란,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 수사 때문이 아니다. 한 원로 정치인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의회주의자였다. 지방자치단체장은 그 지역의 ‘왕’이나 마찬가지다. 여론, 의회 눈치 안 보고 제 뜻대로 할 수 있다”고 했다. ‘한다면 한다’는 이 후보의 리더십을 우려한 것이다.

대장동 사건에서 보듯 지자체는 인허가권과 인사, 예산을 통해 정책 설계부터 집행까지 쥐락펴락할 수 있다. 그가 경기도지사로서 마지막 결재한 사안이 민간투자로 건설된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다. 지역 주민의 교통기본권을 내세워 운영사 측인 국민연금을 ‘사채업자’로 몰아붙였다. 그의 결단력으로는 당선 후 기본소득·주택·금융 시리즈와 부동산 개발이익 완전 환수제 추진은 시간 문제가 될 것이다. 170석에 육박하는 민주당 의석수로 못할 게 없다.

윤 후보는 상명하복 문화가 뿌리 깊은 검찰의 총책임자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검찰주의자다. 그는 경선 마지막 TV 토론에서 대장동 의혹에 대해 “사건을 딱 보면 견적이 나온다”고 했다. 대형 수사를 진두지휘한 경험에서 나온 발언일 텐데 정치 영역에선 위험한 발상이다. 최고 권력자가 ‘견적’을 내놓으면 밑에 있는 사람들은 그에 맞춰 일하게 돼 있다. 공무원 조직 생리가 그렇다. 현 정부를 포함해 역대 정권에서 무수한 일탈 사례가 방증한다.

첫 검찰 출신 대통령 후보라는 점에서 그의 잣대는 더 엄정하게 평가될 것이다. 그도 이를 의식해 수락 연설에서 “권한을 남용하지 않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폐지도 공언했다. 하지만 행정부, 국회는 물론 사법부 통제까지 가능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감안하면 권한 남용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윤 후보 선대위 책임자로 거론되는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자신의 책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50년 정치 인생을 통틀어 말하는 대답”이라면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대한민국이 산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청와대 파워를 줄이고 국무총리, 국회 힘을 키우는 권력 분산이 제도화하지 않으면 0선 후보들이 말하는 정치 혁신은 가능하지 않다. 대권(大權)을 어떻게, 얼마나 절제하느냐가 차기 대통령 리더십과 차기 정부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문재인정부가 교훈으로 남겼듯 선한 권력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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