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신(神)이 말하는 대로’는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참가하는 데스게임 장르다. 기괴한 달마 인형 머리가 교탁에서 “다루마상가 코론다(오뚝이가 넘어졌다)”라고 말하는 동안 학생들이 앞으로 전진하는데, 움직임이 발각되면 목이 달아나는 충격적 모습이 첫 장면으로 등장한다.
이를 본 이들은 아마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첫 장면을 떠올릴 가능성이 크다. ‘신이 말하는 대로’의 이후 장면을 보면 각 교실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체육관 등에 모여 종류가 다른 게임들을 차례로 진행한다. 안타깝게도 참가자 대부분이 목숨을 잃는다.
일본 애니메이션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경우 빚보증을 선 주인공이 사채업자로부터 게임 참가를 조건으로 빚을 탕감받을 기회를 제안 받는다. 이후 주인공은 도박판이 벌어지는 배에 타서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서바이벌 게임을 벌인다. 게임 중에는 낭떠러지 난간을 건너다가 발을 삐긋하면 떨어져 사망하는 설정도 있다.
어디 이뿐이랴.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큰 성공을 거둔 뒤 일본의 ‘신이 말하는 대로’와 ‘도박묵시록 카이지’는 물론 미국 할리우드 영화 ‘헝거게임’, 인도 발리우드 영화 ‘럭’ 등을 들어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이가 많다. 이와 관련해 드라마를 만든 황동혁 감독은 “이 작품(‘오징어 게임’)을 구상했던 2008년 일본 서바이벌 게임이나 데스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많이 봤다”며 “그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은 것은 맞지만 장르적인 클리셰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오징어 게임’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전개 방식은 전혀 다르고 우리 작품만의 차별점이 확실하다”고 덧붙였다.
클리셰란 ‘진부한 표현이나 고정관념’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상투적인 줄거리를 지칭할 때 많이 쓴다. 황 감독의 말은 여러 명이 목숨을 걸고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했다가 상당수가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는 줄거리 자체는 어느 누구도 독점적 저작권을 주장할 수 없는 하나의 보편적 서사 구조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마침 한국저작권위원회가 펴낸 월간 ‘저작권문화’ 11월호가 ‘오징어 게임 표절 논란’을 다뤄 눈길을 끈다. 글을 쓴 최승수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영화나 드라마 영역에서의 표절 판단은 저작권법 분야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영역”이라고 전제한 뒤 “선행 저작물과 후행 저작물을 비교할 때 클리셰 같은 관행적 표현은 비교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기본 아이디어 또는 콘셉트가 비슷한 것이라도 작가나 감독이 그 콘셉트를 풀어가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이 다르게 전개된다면 그것도 저작권 침해로 판단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몇 가지 기준을 근거로 최 변호사는 “‘오징어 게임’에 주어지는 저작권 침해의 혐의는 부당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오징어 게임’의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이 일본 장르영화에서 여러 가지 작품 아이디어와 설정을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저작권 침해로 보긴 어렵다”고 강조했다. 황 감독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그러면서 “‘오징어 게임’은 같은 데스게임인 일본 작품에서 모티브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기존 작품들과는 주제, 플롯, 에피소드의 전개, 등장인물의 설정 및 상호관계 또는 갈등관계, 분위기, 속도 등에서 현저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고 근거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