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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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게 매달린 주홍빛 구슬… 뽀얗게 분칠 단장 언제 되려나 [밀착취재]

달콤 쫀득한 ‘상주 곶감’ 만들기 한창
이오윤 대표와 아내 지애자씨가 애주원 건조장에서 말라가는 곶감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집집마다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선홍빛 곶감이 진풍경을 만들어내는 곳이 있다. 바로 경상북도 상주다. 상주는 지금 제일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상주 둥시가 기계에서 매끈하게 껍질을 벗고 있다.
기계가 깎지 못한 미세한 껍질을 사람이 직접 깎고 있다.
부러지거나 꼭지가 짧은 감에 인공꼭지를 달아주고 있다.

달콤한 곶감을 만드는 과정은 크게 감따기, 감깎기, 감달기, 건조, 이렇게 4단계로 나뉜다. 이른 아침 상주 원예농협 농산물공판장에 곶감을 만드는 떫은 감인 둥시가 속속 모여들고 있다. 이오윤 애주원 대표는 품질 좋은 감을 골라 작업장으로 운반하는 일을 맡고 있다. “저흰 남들보다 5일 정도 늦게 시작해요. 초반에 나오는 둥시는 품질이 많이 떨어져요. 최상품 둥시는 매년 보면 한 5~7일 정도는 지나야 나오는 거 같아요. 빨리 시작한다고 한 해 곶감 농사를 망칠 순 없잖아요.”

코로나 19로 외국인노동자들이 입국을 못해 동네주민들이 감을 깎고 있다.
상주곶감공원에서 모형 호랑이가 처마 밑에 걸린 곶감을 쳐다보고 있다.
이오윤 애주원 대표가 상주 원예농협 농산물공판장에서 곶감을 만드는 떫은 감인 둥시를 살펴보고 있다.

오늘은 감깎기를 시작한 첫날이다. 제일 바쁜 날이기도 하다. “예림이 할머니 조금 서둘러야 될 거 같아” 지애자 애주원 대표의 아내가 일손을 거들러온 강명숙 할머니에게 재촉을 한다. 코로나 이전 같으면 감깎기 기계 5대가 모두 돌아가야 정상이지만 올해는 외국에서 들어오는 노동자들이 없어 간신히 3대만 돌리고 있다.

매끈하게 껍질을 벗은 감은 건조장에 매달리게 된다. 보통은 감꼭지가 붙어 있어 매달면 되지만 간혹 껍질을 깎다가 잘려버린 감은 인공꼭지를 만들어 걸어준다. 지금부터는 시간과 바람 온도와의 싸움이다. 최상품의 둥시라고 해도 기후조건이 안 맞으면 맛있는 곶감을 생산할 수 없다. 이렇게 40일을 건조하면 흔히 말하는 말랑말랑한 반건시가 만들어진다. 거기에 20일을 더 건조하면 수분이 적은 건시곶감이 만들어진다. 옛 이야기 속 호랑이도 무서워한 달고 맛있는 곶감이 드디어 완성된다.

상주 곶감이 전국 제일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곶감에 적합한 품종과 건조하기에 최상의 기후, 550여년간 이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전통 곶감 생산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대량 생산기술 발달로 대부분 현대적인 시설에서 과학적으로 곶감을 생산하고 있다. 처마 밑에 매달린 먹음직스러운 곶감을 찾기는 힘들지만 기본은 전통방식 그대로를 계승하고 있다.

상주는 우리나라 곶감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애주원의 건조장에도 껍질을 깎은 떫은 감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빼곡하게 매달렸다. 주황색의 속살을 드러낸 감과 붉은 건조대가 어우러지면서 건조장은 단풍보다 더 진한 가을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상주의 바람으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겨울철 최고의 간식으로 탄생할 곶감을 기다려 본다.


글·사진=이재문 기자 mo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