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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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5·18 사죄 없이 오욕 남기고 떠난 전두환 전 대통령

12·12 쿠데타가 과오 출발점
경제성장·올림픽 유치는 성과
불행한 역사, 반복되지 말아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어제 90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그의 집권기(1980∼1988)는 대통령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넘어가는 가교의 시기였다. 그는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자신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동원해 12·12 군사정변으로 군을 장악한 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면서 11, 12대 대통령이 된다. 그의 집권 기간은 오욕의 역사 그 자체다. 지난달 26일 사망한 정치적 동지이자 친구로 12·12와 5·18에 대해 사과한 노태우 전 대통령과는 다소 상반된 삶이다.

육군사관학교 4년제 첫 기수(11기) 출신인 그는 군인으로 승승장구하며 대통령이 되기까지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2·12 사태는 오욕으로 점철된 그의 정치역정의 출발점이다. 1980년 5·18 무력진압은 가장 어두운 그림자다. 당시 5월 한 달 동안 확인된 사망자만 165명에 달하는 등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진실 규명과 희생자의 상처 치유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12·12에 대해서는 “우발적 사건”, 5·18은 “좌파세력의 준동”으로 규정했다. 눈감을 때까지 반성과 사과 한마디 없이 궤변과 변명으로 일관한 것이다.

철권 공안통치를 한 그의 반민주·반인권 과오는 이루 헤아리기 힘들다. 1980년 언론 통폐합 등의 조치로 장기집권을 구상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유지한다는 1987년 4·13 호헌조치도 그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국민의 민주화 항쟁에 무릎을 꿇었고 결국 대통령 직선제를 보장한 6·29선언이 발표된다. 과오가 훨씬 크지만 공이 없지는 않다. 집권기간 고도의 경제성장은 국민들에게 성취감을 주었다. 저달러·저유가·저금리 ‘3저’에 힘입었지만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9.3%를 기록했다. 88서울올림픽 유치는 글로벌 무대에 한국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의해 백담사로 쫓겨가고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1997년 내란, 내란목적살인죄,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는 것으로 귀결된다.

불행한 역사 또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불행한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면 그것은 반복된다. 전 전 대통령의 사망을 국가의 미래를 여는 디딤돌로 삼을지 여부는 우리 몫이다. 이제는 그와 같은 불행한 역사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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