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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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임기 말 정권의 ‘대못박기’

종전선언·탄소중립 등 각종 정책
대선 3개월여 앞두고 밀어붙여
차기정부 부담 주고 혼선 부를 뿐
과욕 버리고 지난 4년반 성찰하길

“흔히 임기 후반부를 하산에 비유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 끝없이 위를 향해 오르다가 임기 마지막 날 마침내 멈춰선 정상이 우리가 가야 할 코스다. 임기 1년의 대통령에 새로 취임한 분을 모신다는 자세로 각자 마음을 다잡자.”

문재인 대통령이 2007년 3월12일 노무현정부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에 취임하면서 한 말이다.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의 안정적인 관리에만 그치지는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해 12월 31일 청와대를 떠나면서 문 대통령의 13년 전 발언을 상기시켰다. 청와대가 국정 운영 기조를 유지하면서 남은 국정 과제를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원재연 논설위원

14년 전 ‘임기 마지막 날 멈춰선 정상’을 언급하면서 의욕에 차 있던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 메시지에서는 “새해 우리는 반드시 일상을 되찾을 것”이라면서 “방역은 물론 경제와 기후 환경, 한반도 평화까지 변화의 바람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엊그제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마지막까지 긴장 놓지 않고 초심 잃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대통령 말대로 문재인정권은 임기가 5개월 남짓 남은 시점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이걸 비판할 이유는 없다. 외려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무엇을 열심히 하느냐다. 임기 말 정권이라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데 현실은 딴판이다. 대선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현 정권은 각종 정책을 대못 박듯이 밀어붙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 종전선언 추진을 선언한 뒤 정부는 여기에 올인하는 기류다. 미국은 생각이 다르다. 한국은 종전선언을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끌어내는 지렛대로 활용하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이 먼저 비핵화 의지를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도 시큰둥하다. “적대시 정책과 이중기준 철회가 우선”이라며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결 조건을 내걸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면서 성사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틀인 종전선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발언에선 정권이 바뀌어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유지되도록 대못을 박으려는 의지가 묻어난다.

탄소중립 정책도 마찬가지다.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순배출 제로를 달성한다는 계획은 무모한 측면이 있다. 속도가 미국 등 선진국보다 2~3배나 빠른 데다 기술적으로도 실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장기 교육정책을 세우는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법을 여당 단독으로 처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년 7월 출범하는 국가교육위 위원 임기는 3년이다. 현 정부 임기 안에 친여 성향 위원회가 꾸려지고 사무처 인사까지 끝나면 정권이 바뀌어도 위원들 임기 동안 어쩔 수 없다. 교육정책 대못박기로 볼 수밖에 없다.

정권 말기에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노무현정부는 2007년 대선을 2개월가량 앞둔 10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밀어붙였으나 ‘북방한계선(NLL) 무력화’ 논란 등의 후유증만 남겼다. 결국 정권이 바뀌면서 남북정상 합의는 빛이 바랬다. 섣부른 종전선언은 주한미군 철수 주장 등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 정부가 탄소중립의 과속 페달을 밟으면 뒷감당은 기업이 해야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한 법이다. 지나치거나 넘치는 건 과욕에서 비롯된다. 임기 말 정권의 과욕은 과속으로, 과속은 탈선으로 이어지기 쉽다. 개인사도 나랏일도 과욕은 일을 그르치게 한다.

물러나는 정권은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다음 정권에 부담을 주고 국정 혼선을 가져온다. 남은 기간 과욕을 부릴 게 아니라 정권교체 여론이 왜 과반에 이르는지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게 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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