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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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44명 처치” 극단 선택 한 간호사…월 식사비 10만원 중 4200원 썼다

MBC 뉴스 캡처

 

경기도 의정부 한 병원에서 일명 ‘태움’(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20대 간호사가 생전 동료들에 보낸 문자메시지가 공개됐다. 

 

지난 23일 MBC에 따르면, 숨진 간호사 A씨가 동료 등에 보낸 메시지에는 “어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귀 한쪽이 안 들리더라” “의사 선생님이랑 상담했는데 우울 지수가 높아서 팀장에게 말했대”라는 내용이 담겼다.

 

어느 날 동료에 “진짜 오랜만에 밥 먹어봤다”며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 A씨의 급여명세서에는 한 달에 10만원씩 지급되는 식사비 중 고작 4200원을 쓴 내역만 남아 있었다. 8~10월은 식대 사용 내용이 아예 없기도 했다.

 

또한 A씨는 20명이 넘는 환자를 혼자 담당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동료 간호사 B씨는 “전체 환자 수가 전 병상이 찬다고 하면 44명이다. 혼자서 44명 처치를 다 해야 하니까, 너무 뛰어다녀서 발목이 좀 이상해졌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입사 9개월여 만에 극단적 선택을 한 23세 간호사의 빈소가 경기 의정부시의 한 대학병원에 마련된 모습. 뉴스1

 

이같은 업무 과중에도 선배 간호사에 ‘태움’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A씨는 동료에게 “선배 간호사에게 엄청 혼나 울면서 나왔다. 일하지 말고 나가라고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정황도 전해졌다.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A씨는 결국 병원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팀장은 근로계약서를 내세우며 이를 거부했다.

 

해당 근로계약서 1항에는 ‘근로계약자는 사용자의 계약해지 등이 없는 한 계약체결일로부터 최소 1년 근무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돼 있었다. 또 3항에는 ‘근로자가 사직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최소 2개월 전에 사직서를 제출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었다.

 

이에 대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는 이날 경기 의정부 을지대병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씨의 계약서에 명시된 특약사항이 노동자에게 근무를 강제하고 있다”며 근로기준법 위반임을 지적했다. 

 

이어 “신규 간호사가 스스로 삶을 마감한 비극적 사고의 근본 원인은 병원 측이 간호 인력조차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개원·운영한 데 있다”며 “병원 측의 무책임한 태도에도 원인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지난 23일 경기도 의정부시 을지대병원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신규 간호사 사망 관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로 A씨는 극단적 선택을 한 날 오전 9시21분경 상사에 카카오톡 메시지로 “다음 달부터 그만두는 것이 가능한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상사는 “사직은 60일 전에 얘기를 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이 대화가 끝나고 2시간 후 A씨는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유족도 계약서의 특약사항이 A씨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계약서 4항에는 ‘근로계약자가 1~3항을 위반해 병원에 손해 및 추가비용이 발생하는 경우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면서 배상책임을 명시하고 있어 이행을 강제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근로기준법 제20조는 근로계약의 이행을 이유로 위약금을 설정할 수 없도록(위약 예정의 금지) 정하고 있기 때문. 

 

동료 간호사는 “그 전날에도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너무 해맑게 했다. 그게 마지막 모습인데... 그래서 지금도 솔직히 안 믿긴다”는 심정을 털어놨다.

 

이에 대해 병원 측은 “A씨가 팀장과 상의했을 뿐”이라며 “실제 퇴직을 원하는 경우 모두 받아준다”고 해명을 내놨다.

 

한편 병원 측은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한 자체 조사에 이어 지난 18일 의정부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이에 경찰은 병원 내 ‘태움’ 여부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으며,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소영 온라인 뉴스 기자 writerk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