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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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군 헌신까지 폄훼 말아야

#. 산 설고 물 선 강원도에서 이종해 선배(당시 중위)를 처음 만났다. 그는 기자가 육군 소위를 달고 배치받은 부대의 전임 소대장이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교육훈련부터 부대관리까지 하나의 ‘교범’ 같았던 선배였다.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소대장 부임 전 지휘실습 차원에서 같이했던 훈련이었다. 선배는 고지 점령을 위해 높은 산을 뚜벅뚜벅 올랐고, 소대원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했다. 어떤 고성이나 질책도 없었다. 정상에서 선배는 힘든 기색 없이 지친 소대원을 다독였다. 그런 그를 소대원들은 진심으로 믿고 따랐다. 참 닮고 싶은 소대장이었다.

그런 선배를 최근 육군이 발표한 ‘자랑스러운 육군 가족상’ 기사에서 봤다. 육군 가족상 수상자로 소개된 선배가 참으로 반가웠다. 십수년이 흘러 계급은 중령으로 무게를 더했지만, 모범적인 군인으로서의 모습은 여전한 듯했다. 선배는 육사 동문과 결혼해 16년 차 부부군인으로 슬하에 딸 하나를 뒀다. 선배 부부는 결혼 후 14번의 가족 이사를 했고, 주말부부로 지내며 개별 이사는 28번 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딸은 유치원만 5번, 초등학교는 4번을 옮겼다고 했다. 군인으로서, 군인가족으로서 이를 감내하고 소임을 다했을 선배 부부에게 이번 상은 당연해 보였다. 선배 부부와 딸, 이를 뒷받침했을 선배의 가족에게 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김선영 외교안보부 기자

#. 홍희선 상사는 소대장 시절 소대원이었다. 병에서 부사관을 지원한 그는 같은 부대에서 하사 생활을 시작했다. 기자가 전역하면서 연락이 끊겼던 그의 소식을 최근 우연찮게 듣게 됐다. 홍 상사는 지난해 낙상환자를 구한 ‘의인’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그는 지난해 7월 출근길에 아파트 경비원이 머리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이었지만, 아랑곳 않고 반사적인 행동으로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을 통해 경비원의 생명을 구했다. 119구조대가 출동해 경비원을 이송하는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출근을 했다. 몸에 묻은 피도 제대로 닦지 않은 채. 묻힐 뻔했던 그의 선행은 아파트 주민대표가 소속 부대에 감사 편지를 보내면서 알려졌다.

홍 상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코로나19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려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누구든 그 상황을 마주했으면 저와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항상 제 몫을 다하고,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하는 책임감이 있다.’ 기자가 소대원이던 홍 상사에 대해 기록했던 내용이다. 그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올해도 성범죄를 포함한 각종 사건·사고, 병영 내 악·폐습 등으로 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한두 해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기에 군의 쇄신은 절실하다. 그래도 일부 군인과 군의 구조적 문제로 군 구성원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기자 주변만 보더라도 이 중령과 홍 상사와 같은 이들이 있다. 대한민국 군인 대부분은 분명 이 중령과 홍 상사처럼 오늘도 각자 위치에서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있을 것이다. 군인은 사기를 먹고산다고 한다.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한다.


김선영 외교안보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