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추수감사절(Thanksgiving) 연휴에 들어갔다. 추수철에 가족, 친지가 모이는 명절 혹은 휴일은 많은 농경문화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지만,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유럽인들의 신대륙 정착 역사와 맞물려있다. 유럽인들은 긴 세월에 걸쳐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했지만, 미국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단이주는 1600년대 초에 이뤄진 청교도의 이주, 특히 1620년에 지금의 매사추세츠주에 해당하는 동북부에 도착한 메이플라워호이다.
한국의 송편이 추석을 상징하듯, 미국에서는 칠면조 요리가 추수감사절의 상징이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상징성을 갖게 된 건 아니지만, 1863년 링컨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을 연방의 공휴일로 선포하면서 칠면조 요리를 저녁 식사 메뉴로 고르면서 미국인들 사이에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를 먹는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고 한다. 대개 오븐에서 굽거나 큰 통에 넣고 튀기는 칠면조 요리는 크리스마스에 가족이 모일 때도 인기 있는 메뉴지만 사실 요리하기 쉬운 고기는 아니다. 닭에 비해 지방이 적어서 ‘드라이(dry)’하기 때문에 먹기 좋게 하기 위해서 레시피에 따라서는 껍질 바로 안쪽에 버터를 넣기도 한다. 주로 명절에 칠면조를 먹고 평소에는 대부분 닭고기를 먹는 데는 그만 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이 새를 7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의미로 ‘칠면조(七面鳥)’라고 부르지만 미국에서는 터키(turkey)라 부른다. 그리고 그 터키라는 단어는 그리스 동쪽에 위치한 나라 터키(Turkey)과 같은 철자를 갖고 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신대륙이 본 고장인 이 새는 영국의 청교도가 신대륙에 몰려가기 이전인 1500년대에 이미 영국으로 전해졌고 그때 터키라는 이름이 붙었다. 왜 그랬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리고 두 가지 모두 터키 상인들과 관련이 있다.
첫 번째 주장에 따르면 칠면조가 영국에 처음 도착한 건 1500년대였는데, 신대륙에서 바로 가져온 게 아니고, 콘스탄티노플로 먼저 갔다가 그곳에서 키운 칠면조를 터키의 상인들이 영국으로 수출했다고 한다. 그래서 영국인들은 이를 ‘터키 닭(Turkey coq)’이라고 불렀다는 것. 사실 칠면조가 정확히 터키에서 수출한 것이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당시 영국인들은 멀리 동쪽에서 온 문물은 모두 ‘터키’라는 수식어를 붙였기 때문이다. 페르시아에서 만든 양탄자는 ‘터키 러그(rug)’, 인도에서 온 밀가루도 ‘터키 밀가루(flour)’, 심지어 헝가리에서 만든 가방도 ‘터키 백’이라고 부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도 서구에서 온 것들에는 전부 양(洋)이라는 접두어를 붙여서 양철, 양잿물, 양동이, 양초 등으로 부른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상상 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 주장은 좀 다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하기 오래전부터 유럽인들은 칠면조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가금류를 즐겨 먹고 있었다. 우리말로는 ‘뿔닭’이라고 번역되는 이 새는 ‘기니 파울(Guinea foul)’로 서아프리카 지역의 기니에서 왔다. 그런데 이 뿔닭 역시 터키 상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전래된 걸 키우다가 영국으로 가져왔기 때문에 영국인들은 뿔닭을 ‘터키 닭’ 혹은 ‘터키’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한 영국인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뿔닭, 즉 터키와 아주 닮은 새가 돌아다니는 걸 보고 그 새 역시 터키 닭이겠거니 한 거다. 물론 이 둘은 비슷하게 생겼고, 같은 닭목에 속하지만 뿔닭은 뿔닭과에, 칠면조는 꿩과에 속하는 다른 동물이다.
여기서 궁금한 게 있다. 그렇다면 정작 터키에서는 이 새를 뭐라고 부를까. 힌디(hindi)라고 부른다. 인도에서 온 새라는 의미다. 영국인들에게 터키가 멀고 신비한 동쪽의 나라였다면, 터키인들에게 멀고 신비한 동쪽 나라는 인도였다. 다들 기원을 잘 모르는 문물은 동쪽에서 왔다고 생각해버리던 습관의 산물로 보인다. 이 새가 인도에서 왔다고 생각한 건 프랑스도 마찬가지여서 ‘당드(dinde)’라고 부른다. 당드는 ‘인도 닭(poule d’Inde)’의 줄임말이다. 이스라엘 역시 칠면조를 인도 닭이라는 의미로 ‘타르네골 호두(tarnegol hodu)’라 부른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그리고 스칸디나비아 지역도 조금씩 다른 이름을 사용하기는 해도 결국 인도에서 왔다고 생각한 나라들이다.
더 재미있는 건 이스라엘을 제외한 중동 국가들이 칠면조를 부르는 이름이다. 이들은 칠면조를 ‘딕 루미(dik rumi)’, 즉 ‘로마 닭’이라고 불렀다. 이쯤 되면 거의 총체적 난국이다. 결국 각 나라는 칠면조를 자신들에게 전해준 나라가 그 새의 본고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기왕 파헤치는 김에 좀 더 들어가 보자. 유럽의 나라들이 칠면조가 인도에서 왔다고 생각한다면 인도에서는 이 새를 뭐라고 부를까. 웃지 마시라. ‘페루(Peru)’라고 부른다. 남미의 국가 페루. 왜일까. 이는 아마도 칠면조를 신대륙에서 가져다 인도에 전해 준 포르투갈 때문일 거라는 설이 있다. 왜냐하면 포르투갈 사람들은 다른 유럽인들과 달리 칠면조를 ‘페루’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로 그곳에 가서 칠면조를 잡아 대서양을 건너 유럽, 그리고 멀리 인도까지 퍼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름에 대혼란이 생긴 이유를 두고 혹자는 당시 무역을 하던 상인들이 자신이 파는 물건의 원산지를 감추던 습관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어디에서 물건을 가져오는지 알려지면 다른 나라 상인들이 같은 공급처로 직행해서 경쟁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의 페루는 현대 국가의 페루라기보다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스페인이 지배하던 영토를 통틀어 부르던 이름이다.
게다가 초기에 유럽인들에게 신대륙이 인도라고 잘못 알려졌던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콜럼버스는 1506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이 발견한 대륙이 인도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아메리카 대륙 동쪽의 섬들은 ‘서인도제도’라고 불린다. 따라서 신대륙에서 온 칠면조가 인도의 새라고 생각하는 건 적어도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상상 가능한 일이다. 결국 이 모든 일이 얽히고설키면서 칠면조의 이름은 뒤죽박죽이 된 것이다.
칠면조는 하필 인류가 대항해 시대에 들어가고 지리상의 발견이 일어나던 시절에 새로운 먹거리로, 그것도 비슷하게 생긴 뿔닭과 함께 퍼지는 바람에 온갖 지명이 이름으로 붙어버렸지만, 그렇다고 현대에 들어와서 그런 일이 멈춘 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은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사람들은 스페인에서 왔다고 생각했고 애꿎은 스페인 이름이 팬데믹에 붙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경우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있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이 바이러스가 다른 나라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인류는 이름을 붙일 때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를 쳐다보는 버릇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