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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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자연 공생해야”… 콘크리트숲 속 ‘기적의 습지’ 만들어 [세계는 지금]

日, 환경보전 시민 참여 하나의 흐름
습지 보호 상징·환경교육 요람 ‘야쓰갯벌’
주변 개발 와중 시민들 관심 덕분에 보존
습지 사방엔 거대한 주택·상업시설 병풍
좀도요·대백로 등 연간 조류 110여종 관찰
1993년 日 최초로 국제 람사르협약 등록

2008년 설립 ‘지바현생물다양성센터’
시민 참여 생물 모니터링 프로젝트 진행
재래·외래종 57개 생물 발견 땐 인터넷 보고
최초 발견 시점·분포 상황 등 한눈에 파악
단원 1500여명 활동… 11만9000여건 보고
지난 1일 일본 지바현 나라시노시 야쓰갯벌의 푸른 습지에서 대백로, 쇠백로 등 새들이 무리를 지어 쉬고 있다. 야쓰갯벌은 사방이 주택가 등으로 둘러싸여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도시에 떠 있는 섬과 같은 존재다.
나라시노=김청중 특파원

도요새 일종인 좀도요는 작지만 멀리 나는 새다. 한뼘 크기(15㎝) 몸으로 해마다 시베리아와 호주 사이를 왕복한다.

시베리아에서 8∼9월 한반도·일본 열도로 날아와 머물다 떠나 10∼3월을 호주·뉴질랜드에서 지낸다. 남반구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낸 뒤엔 다시 역방향으로 비행해 4∼5월을 한반도·일본에서 숨을 돌린 뒤 날아가 6∼7월은 시베리아에서 머문다. 왕복 2만4000㎞의 대여정이다. ‘그 몸은 비록 작지만 가장 멀리 나는 새’가 도요새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본 도쿄만(灣)에서 2㎞ 내륙의 주택지 인근엔 좀도요가 작은 몸을 쉴 수 있는 휴식처가 있다. 지바(千葉)현 나라시노(習志野)시 야쓰갯벌(谷津干潟). 지난 1일 방문한 야쓰갯벌자연관찰센터에서는 대백로, 쇠백로, 홍머리오리, 쇠오리가 떼지어 나는 푸른 습지의 장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연간 110여종의 새가 관찰된다. 4∼5월과 8∼9월 이곳에 날아오는 좀도요도 여행 중 40g에서 20g로 더욱 작아진 몸을 재충전한 뒤 다음 목표를 향해 출발한다.

 

습지 사방에는 산, 수풀이나 갯벌이 아닌 거대한 주택지와 상업지가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습지 한쪽 위로는 히가시간토(東關東)고속도로가 주위를 어색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간석지를 직선으로 관통할 경우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어 습지를 우회하도록 방향을 틀어 설계됐다고 한다.

이곳은 기적의 습지로 불린다. 주변 간석지가 매립돼 공업용지, 주택지 도로로 개발되는 와중에도 시민의 보호활동에 힘입어 도시 안의 철새 도래지로 보존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만과 닿아 있던 주변의 광대한 갯벌은 1971년부터 시작된 매립으로 도시로 변모했다. 40㏊(0.4㎢) 규모의 직사각형 습지를 항공사진으로 보노라면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바다 위의 외로운 푸른 섬이 떠오른다.

 

지바현생물다양성센터의 이노치노니기와이(생명의번창)조사단 활동에 참여한 어린이 등 시민들이 현장 연수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지바현생물다양성센터 제공

이곳은 시민의 보호·보전활동 덕분에 1988년에는 국립조수(鳥獸)보호구로 지정됐으며 1993년 6월 일본 최초로 람사르협약(물새 서식처로서 국제 중요 습지에 관한 협약)에 등록됐다. 1997년 3월 우리나라 최초로 람사르협약에 등록된 강원도 인제군 대암산 용늪보다 4년 정도 빠르다.

1994년에 문 열어 해마다 5만명이 찾는 야쓰갯벌 관찰센터는 일본 시민의 습지 보호활동 상징이자 환경교육의 요람이 되고 있다. 특히 시민이 참여하는 자원봉사 활동의 기여가 크다. 140여명의 자원봉사자는 정기적으로 3.5㎞의 습지 주위를 돌며 환경 관찰과 쓰레기 수거, 녹조 제거 등의 활동을 한다. 방문객을 위해 교보재를 만드는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73세 자원봉사자 우레시노(嬉野) 루미코씨는 “퇴직 후 5∼6년 전부터 1주일에 4회씩 새를 관찰하고 망가진 시설이 없는지 점검을 하거나 초등학생들이 견학 오면 지원을 한다”며 “습지를 보호할 수 있고 내가 즐거우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바현생물다양성센터 오노 도모키(小野知樹) 센터 주간 겸 실장이  생물다양성확보를 위한 외래종 구제(驅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바=김청중 특파원

센터의 오야마 후미코(小山文子)씨는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위한 시민의 관심과 참여를 강조했다. 그는 “도쿄만의 갯벌이 10분의 1로 감소하면서 생물도 감소하거나 대규모 녹조가 발생하는 등의 환경문제는 아직도 남아 있다”며 “야쓰갯벌이 람사르협약에 등록됐다고 해서 (저절로)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50년, 100년 뒤에는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와 함께 생물다양성 문제는 지구촌 화두다. 내년 봄 열릴 예정인 제15차 유엔 생물다양성협약(UNCBD) 당사국 총회(COP15) 제2부에서는 2030년까지의 생물다양성 확보 체제를 마련하기 위한 합의 도출이 시도된다. 이런 시대적 격랑 속에서 환경보전과 전승을 위한 시민 참여는 하나의 흐름이 되고 있다.

 

야쓰갯벌자연관찰센터의 오야마 후미코씨와 자원봉사자 우레시노 루미코씨. 나라시노=김청중 특파원 

지바시에 소재한 지바현(縣)생물다양성센터는 2008년 4월 설립 직후인 그해 8월부터 시민 참여형 생물 모니터링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노치노니기와이(생명의번창)조사단으로 이름 붙여진 이 프로젝트는 57개 재래종, 외래종 생물을 대상으로 발견 시 인터넷 등을 통해 보고함으로써 연간 최초 발견 시점, 분포 상황을 점검한다. 특정 식물의 개화 시기나 조류·곤충의 울음소리를 들을 경우 보고하도록 하는 계절 보고도 있다. 일본 남부 규슈(九州)에서만 발견되던 멤논제비나비도 시민활동을 통해 간토 지역인 지바에서 확인되고 있다.

현재 단원 1541명(4월1일 기준)이 활동 중이며, 11만9647건의 보고가 들어왔다. 단원 연령대(2013년 자료)는 18세 미만이 13%이고, 61세 이상이 33%다. 센터는 현장 연수회, 사진 콘테스트, 포럼 등을 통해 조사단 활동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야쓰갯벌의 1995년 항공사진 모습. 직사각형의 습지를 주택지 등이 에워싸고 있으며 고속도로가 우회해 지나고 있다. 야쓰갯벌자연관찰센터 홈페이지

오노 도모키(小野知樹) 센터 주간 겸 실장은 “프로젝트가 10년 이상 계속되면서 57종에 대한 시민의 제보가 계속되고 있다”며 “몇십년 지나면 기후변동, 지구온난화도 확인될 수 있다. 멤논제비나비 발견 사례도 지구온난화의 영향인가, 아니면 누가 (규슈에서) 가져온 나비인가, 우리에게 더 조사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나라시노·지바=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