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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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존 ‘안전 울타리’ 만든 트럭 운전사들의 양심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입력 : 2021-12-11 13:19:39
수정 : 2021-12-11 15: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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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스프링 낙하사고 취재 그 후

노면 충격 흡수 위한 차량 완충장치
도로 떨어져 퉁겨지면 위험한 흉기로
책임 물으려 해도 차주 찾을 수 없어
블루 핸즈, 불법 판스프링 ‘업사이클’
수거 대상 화물차주에 주유권 선물
차주 72명 동참… “조심해서 건너렴”
서울 구로구 덕의초 인근에 설치된 어린이보호구역 안전 울타리. 수거 후 녹인 불법 판스프링이 어린이들을 보호하는 울타리로 재탄생했다.

“조금만 각도가 틀어졌다면 지금 통화조차 못 했겠죠.”

“차 앞유리로 날아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두려움이 느껴지고….”

‘도로 위 흉기’로 불리는 판스프링 낙하로 인한 교통사고 취재(세계일보 2020년 6월27일자, 2021년 4월14일자 참조)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면서 자기에게 닥쳤을지 모르는 끔찍한 결과에 몸서리를 쳤다.

판스프링은 노면 충격 흡수를 위해 차량 하부에 설치하는 완충장치인데, 화물차 적재장치의 벌어짐을 막고자 이를 지지대로 불법 활용하는 일이 종종 있어 사고로 이어진 바 있다. 판스프링은 도로로 낙하해 퉁겨지면 운전자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흉기가 된다. 또 책임을 물으려 해도 차주를 사실상 찾을 수 없어 ‘가해자 없는 사고’로도 불린다.

피해자들은 운전 중 전방에서 날아온 판스프링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오거나 앞범퍼에 박히는 사고로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겪었다. 이들은 물론이고 사고 기사를 접한 누리꾼의 바람은 비슷했다. 판스프링을 불법개조하지 않도록 차주가 법령을 준수하는 등 안전의식을 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판스프링이 스쿨존 ‘안전 울타리’로… 서울 시내 초등학교 3곳에 설치

앞서 지난해 10월 국토교통부와 경찰의 판스프링 불법 설치 근절 정책이 시작된 바 있다. 이어 지난 8월에는 서울시와 국토부·경찰청·현대자동차·한국교통안전공단이 화물차의 불법 설치 판스프링을 ‘안전 울타리’로 만들어 서울 초등학교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 설치한다고 밝히기도 했었다. 현대차의 공식 협력 서비스센터인 블루 핸즈가 화물차주로부터 수거한 불법 판스프링을 업사이클(upcycle·재활용품에 활용도 등을 더해 가치를 높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해 울타리 재료로 제공했다. 아울러 현대차는 무상으로 불법 판스프링을 제거하고, 수거 대상 화물차주에게 10만원 정도의 주유 상품권을 선물했다.

판스프링의 안전 울타리 ‘재탄생’을 직접 확인해 보고자 지난 1일 전면 등교가 한창이던 서울 구로구 소재 덕의초를 찾았다.

안전 울타리는 어떻게 생겼는지, 서울 어디에서 등·하굣길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는지 사고를 취재했던 기자로서 그 뒷이야기가 궁금했었다.

판스프링 수거 당시 트럭 운전사 김한성씨가 아이들에게 남긴 당부의 메시지를 담은 안전 울타리.

◆‘트럭 운전자의 동참으로 안전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오전 8시20분쯤 덕의초 정문 앞 인도와 왕복 4차로 도로 사이에 설치된 안전 울타리 14개가 눈에 띄었다. ‘트럭 운전자의 동참으로 만들었습니다’라는 문구를 새긴 덕분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날 아이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주민들에게 “혹시 이 울타리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과거 취재 경험을 들어 판스프링이 아이들을 위한 안전망이 됐다고 설명해 주니 신기해했다.

서울 시내 초등학교 3곳에 안전 울타리가 설치됐다는 시와 현대차 설명을 토대로 같은 날 동대문구 신답초와 강남구 대청초 인근도 살펴봤다. 신답초 정문을 등지고 오른쪽에 모두 11개, 대청초 정문 좌우에 각각 12개와 8개 울타리가 있었다.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로 어린이보호구역이라 새겨진 화물차 모양의 안내판이 함께 설치돼 있다.

◆화물차주 72명이 판스프링 340개 제출… 울타리에 ‘조심히 건너렴’ 메시지도

현대차는 화물차주 72명이 불법 판스프링 340개를 자발적으로 제출했으며, 이를 녹여 울타리로 새롭게 만들었다고 세계일보에 전해 왔다.

현대차 관계자는 “화물차 운전자들과 함께 도로 위 안전을 지키고, 근본적으로는 불법 판스프링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이라고 이번 캠페인의 취지를 설명했다.

서울시도 안전 울타리 설치 보도자료를 내면서 안전한 통학 환경을 조성하는 효과를 거두고, 화물차 운전자의 안전관리 의식을 확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안전 울타리는 △주변 도로에 오가는 차량이 많은 학교 △횡단보도와 가까운 학교 △무단횡단 발생 가능성이 큰 지역 △어린이보호구역 울타리의 노후화 등을 고려해 설치됐다. 시와 현대차는 초등학교·구청과 협의를 거쳐 설치 장소를 정하는데, 연내 5곳을 추가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비 오는 날은 더 위험하단다. 조심히 건너렴.”(트럭 운전사 김한성씨)

“횡단보도 건널 때는 좌우를 꼭 살펴 안전하게 건너야 해요.”(트럭 운전사 조영환씨)

“무단횡단은 정말 위험해요. 언제나 차 조심해서 건너야 해요.”(트럭 운전사 이동영씨)

이날 둘러본 어린이보호구역 안전 울타리에는 아이의 안전을 바라는 화물차주들의 메시지도 이렇게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