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환경단체들이 국내에서 판매 중인 화장품 20개 중 10개 제품에서 1종 이상의 과불화화합물(PFAS)이 검출됐다는 조사 결과를 밝혀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입술에 직접 닿는 립 메이크업 제품은 모든 제품에서, 자외선 차단제는 80%, 메이크업 베이스는 50%, 파우더·팩트는 40%가량 PFAS가 검출됐다.
PFAS는 탄화수소의 기본 골격 중 수소가 불소로 치환된 형태의 물질로, 탄소가 6개 이상인 과불화술폰산류와 탄소가 7개 이상인 과불화지방산류 및 그 염류 등 여러 가지 화합물이 있다. 대표적으로 과불화옥탄산(PFOA)과 과불화옥탄술폰산(PFOS)이 있다. 이는 열에 강하고, 물이나 기름 등이 쉽게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는 특성이 있어 화장품뿐 아니라 테이크아웃 컵의 코팅제, 세척제, 페인트, 바닥용 광택제, 식품 포장재, 조리기구, 방수 등산복 등 코팅 기능이 필요한 수많은 소비재에 사용된다. 잘 분해되지 않는 특징이 있어 ‘영원한 화학물질’이라고도 불리는 PFAS는 체내에 축적돼 간독성, 암 유발, 발달장애, 호르몬 교란, 신경질환의 원인이 된다. 최근에는 신장암과 전립선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이러한 이유로 PFAS에 대한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어 왔다. 작년 유럽의 비영리단체도 유럽 내에서 유통되는 포장재 제품을 대상으로 PFAS 검출조사를 해 보고서를 발표하며, 주요 패스트푸드 기업에 사용금지를 촉구했다. 특히 동일한 패스트푸드 기업이 식품 접촉 포장재의 PFAS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덴마크를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는 PFAS를 포함한 포장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단체들은 이러한 사례를 들며 대체재가 있는 제품의 경우 강력한 규제를 통해 사용 제한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글로벌 패스트푸드 기업을 대상으로 압박을 이어 갔다. 이에 대표적인 패스트푸드 기업은 전 세계 매장에서 사용하는 포장재에 첨가된 PFAS를 2025년까지 제거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규제가 강화되는 움직임도 있다. 유럽연합(EU)은 2020년 PFOA를 화학물질의 등록·평가·허가·제한(REACH) 물질로 지정했으며, EU 화학물질전략에 따라 PFAS의 ‘필수적 사용’ 기준에 대해 논의 중이며, 친환경 인증에도 반영할 예정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지난 10월 산업현장의 검출을 자체 조사해 작년 비영리 환경단체인 ‘환경 워킹그룹’이 조사한 결과보다 4배 이상 많은 노출이 있다고 밝혔다. 석유와 가스 관련 시설뿐 아니라 폐기물 관리 시설, 금속 코팅 시설, 화학물질 생산 시설, 플라스틱 제조 시설, 공항·소방 훈련 시설, 군 시설 등에서도 검출됐다고 했다. 이에 EPA는 내년부터 산업 현장의 PFAS 배출 규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3년 안에 이를 퇴출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메인주의 경우는 2030년까지 대부분의 제품에서 PFAS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2023년 1월부터 PFAS를 함유한 판매용 제품의 제조업체는 주 당국에 통지의무를 부여받게 됐다. 캘리포니아주도 2025년부터 PFAS를 뷰티 제품에 사용하는 것을 금했으며, 이는 미국 전역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PFAS에 대한 규제뿐 아니라 화학물질 전반에 대한 시민 민감도가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글로벌 기업이 각 국가의 규제 유무에 따라 제품에 함유되는 화학물질을 다르게 포함하는 것이 문제시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업 평판을 좌우하는 중요한 리스크 요인이 된다. 더불어 이러한 물품을 납품하는 중소중견기업도 점진적으로 사업 모델에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산업계는 생산 제품의 기능성 향상을 위해 PFAS 사용 시 선제적으로 자체 기준을 설정해 품질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기존의 PFAS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으면서도 건강유해성이 없는 대체물질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 개발을 할 경우 이를 통해 막강한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할 것으로 보인다.